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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한 삶의 자리의 영광
슬픔 속 위로_ 레비나스는 고통 받는 타자의 얼굴이 보내는 메시지는 절대자가 보내는 것과 같아서 거부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 요즘, 너무 많은 절대자가 나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자꾸만 밟힌다.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분노한다. 그런데 참으로 감사한 일은 주변에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이 마음을 함께 나누고 있다는 점이다. 용기가 되고 힘이 된다. 나의 한 친구는 고통 받는 타자의 슬픔에 동참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이건 어때,'하며 늘 메시지를 보내온다. 또 어떤 이는 '이 이슈를 가지고 함께 해볼 수 있는 일이 없을까요'하고 물어온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당장에는 별로 없지만 마음을 모을 수 있는 것이 감사하다. 또 어떤 이는, 이러한 이슈들을 곱씹어 고민하여 문제의 기원들과 민낯들을 드러낸..
옥바라지 골목. 아침에 친구가 보내 준 링크를 이제서야 열어서 읽어보았다. 옥바라지, 무슨 뜻인가 했더니만 옥살이 하는 가족들을 뒷바라지 해준다는 '옥바라지'란다. 참 좋아하는 작가, 박완서 선생님도 이곳에서 살았단다. 내가 오늘 하루를 토플공부에, 과외에, 졸업시험에 쫓겨서 오후 5시에 첫 끼를 삼키는 동안 서울 한 켠의 낡아빠진 한 골목의 사람들은 생계를 위해 울부짖었다. 내가 믿는 예수는 이웃사랑을 말했고, 그는 약한 자를 사랑했고, 그는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주었다고, 그래서 내 삶은 오늘의 밥 한끼를 꿀떡 삼키면서도 옥바라지 골목의 여관방 할머니의 삶을 아파해야 마땅함이었다. 그러나 내가 밥숟갈을 들고 꾸역꾸역 김치찌개에 숨겨진 고기를 찾아 먹으며, 부모에게 온 전화를 받았을 때, 나는 옥바라..
윤동주의 시를 원래 좋아하긴 했지만, 김응교 교수님을 만나면서 그와의 만남이 아주 깊어지고야 말았다. 거의 한 달 째 '처럼(김응교_문학동네)'를 잘근잘근 씹어가며 읽고 있다. 한 작가의 전 생애를 보여주면서 시를 해석한 책은 처음 읽어본다. 실은 시 '해석'이라는 것 자체가 나에게 거부반응을 불러일으킨다. 마치 중고등학생 때 억지로 시를 주입했던 그 텁텁함이 다시 생각나는 듯해서 말이다. 그런데 이 책은 그렇지가 않다. 윤동주를 정말 사랑하는 한 사람이, 그의 삶과 깊게 조우하며, 그의 고민의 시간들을 같이 위로하며, 써 내려간 탓이겠다… 단편적으로 그의 시를 좋아했다면, 이제는 그가 좋아졌다.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사람을 깊게도 그리워 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동주가 그립다. 동주의 많은 모습이 나..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_윤동주의 서시의 유명한 한 구절인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라는 말의 의미를 오늘 다시 새겨본다. 죽어가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한다. 쉬이 떠올릴 수 있는 것들이 가난한 자, 병든 자, 난민, 고아와 같은 사회적으로 약한 위치에 놓은 어떤 신분이다. 혹은 말 그대로 육체적으로 죽어가는 어떠한 것들이다. 허나, 이렇게 죽어가는 것들에 대해 정의하는 것이야 말로 참으로 시대적인 가치관에 따른 정의이다.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만한 부를 가진 자들도 죽어가는 자들일 수 있다. 그들만의 고통과 슬픔을 품고 있는 죽어가는 자들일 수 있다. 그들의 고통과 슬픔이 다른 누군가의 그것과 다르며, 어떤 것이 더 크다고 함부로 말할 수 없다. 한 때는, 가진 자들을 그냥 미워했던..
십자가, 윤동주 1연, "쫓아오던 햇빛인데/지금 교회당 꼭대기/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윤동주가 살았던 명동마을 교회당 지붕에 있는 십자가를 그는 늘 바라보았다고 합니다, 2연, "첨탑이 저렇게도 좋은데/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화자의 염려가 있습니다. 십자가에 올라갔던 이가 걸었던 길을 따르기보다는 외면하고 싶습니다. 한계를 느끼는 겁니다. 3연,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종소리가 들려오지 않습니다, 당시 시가 쓰였던 40년대의 상황입니다. 교회는 예언자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희망이 없는 시대에,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립니다. 이러한 서성거림에 꿈을 상실한 자들의 아픔이 배어있습니다. 4연, "괴로웠던 사나이/행복한 예수-그리스도에게/처럼/십자가가 허락된다면 극적..
한국어판 서문 오늘날처럼 정보를 쉽게 구할 수 있게 된 사회에서는 신뢰에서 통제로의 시스템적 전환이 일어난다. 투명성의 폭력 무제한의 자유와 무제한의 커뮤니케이션은 전면적 통제와 감시로 돌변한다 긍정사회 시각의 빈틈이 없는 사랑은 포르노이다. 그리고 지식의 빈틈이 없다면 사유는 계산으로 전락하고 만다. 반면 오직 긍정적인 것 사이에서만 뛰어다니는 자는 정신이 없다. 정신은 느리다. 부정적인 것에 머무르며 그것을 소화하기 위한 작업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투명성의 시스템은 스스로를 가속화하기 위해 모든 부정성을 폐기 처분한다. 부정적인 것에 머무르기 보다 긍정성 속에서 질주하는 것이다. 사랑은 길들여지고 긍정화되어 소비와 안락의 상투형이 된다. 어떤 상처도 입지 않아야 한다. 고뇌와 정열은 부정성의 형상이다..
누가복음 22장 54-71절을 묵상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닭이 세 번 울기 전에 네가 나를 부인 할 것이라고 하셨지만, 베드로는 손사레를 치며 아니라고 대답했다. (나의 상상력 첨가!) 베드로는 참 나와 닮았다. 에너지 넘치고, 큰 소리 뻥뻥 치고, 성격이 다소 급하고, 그리고 예수님을 참 사랑한다는 말을 하며 자신의 자아를 뽐내기도 하는 모습들이 참 닮았다. 예수님께서 잡혀가려고 하는 순간 베드로는 칼을 들어 대제사장의 귀를 자른다. 어쩌면 베드로는 그 때 예수님께서 세 번 부인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을 떠올렸을지 모르겠다. 칼을 들어 귀를 자르는 행위는 '보세요 예수님, 제가 당신을 이렇게 사랑합니다, 저는 부인하지 않는다니까요'말하는 것 같다. 그 사건이 일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베드로는 ..
엊그제 KBS 성경공부에서 들은 재미있는 비유다. 한 어머님께서 새로 차(Car)를 뽑으셨는데 그리 비싸지 않은 차였단다. 하루는 그 차를 아파트 주차장에 바치시는데 경비원 아저씨께서 물어셨단다. '돈도 많으신 분이 왜 이런 차를 뽑으셨대요?' 어머님은 그 순간이 참으로 자랑스러웠단다. 전혀 부끄럽지도 않으셨단다. 어머님은 실제로 강남에 집을 가지고 있는 남부럽지 않을 재력가셨기 때문에 그것이 부끄러울 일이 없었다는 거다. 또 어떤 날은 그 차를 끌고 백화점에 들어가는데 주차를 안내하시는 분이 저쪽으로 주차하라며 안내를 하셨단다. 좋은 차면 보통 발렛파킹을 원하냐고 물어보곤 하는데, 별로 좋지 않은 차라서 바로 안내를 했다는 거다. 그 때 그 어머님은 지갑에서 발렛파킹이 가능한 신용카드를 척- 꺼내 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