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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한 삶의 자리의 영광

몇 년이 지나도 계속 곱씹게되는 시이다. . 한 발짝 다가서면 한 발짝 물러서시고, 한 발짝 물러서면 한 발짝 다가오시는 당신, 우리 한몸 되면 나의 사랑 시들 줄 당신은 잘 아시니까요. . 병든 이후, 이성복

나는 노무현의 시대를 살지 않았다. 그러니까, 나는 이 땅의 생명체로 살아있긴 했지만 사실 상 노무현의 시대를 함께 살아낸 시민은 아니다. 나는 독재정권 시대 때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었고 잔인한 시절이 조금 흐른 이후에 한국에 태어났다. 정치를 모르고 컸다. 단지 어릴 때, 길거리에 붙은 노무현의 대선 홍보 현수막을 보고 아빠한테 '아빠, 난 저 사람이 맘에 들어, 인상이 아주 선해.' 라고 했던 기억은 선명하다. 아빠가 사람 볼 줄 안다고 웃었고, 옆에 어른들도 덩달아 웃었다. 그것이 노무현에 대한 나의 첫 번째 기억이다. 두번째 기억은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이후 교실에서 벌어졌던 작은 논쟁이다. 노무현 대통령을 기리는 무슨 건물을 크게 짓는다는 신문기사를 읽고 있었고, 역사&정치 의식이 부재했던 나는..

이제 해가 지고 길 위의 기억은 흐려졌으니 공중엔 희고 둥그런 자국만 뚜렷하다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 기형도

식물 친구들을 키우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아직은 많이 초보이다. 몇 년 전부터 아름아름 몇 아이를 데리고 와서 시행착오를 겪었는데, 뿌듯하게도 테이블야자를 아주 잘 키워냈다. 처음에 화분은 거의 손바닥 만했는데 , 지금은 화분크기가 두배 정도 되었고, 줄기도 매달 쭉쭉 새로 뻗어내고 있다. 최근에는 바질과 루꼴라 모종을 주문해서 심었는데, 루꼴라는 이주만에 사망하셨다. 이렇게 바질과 루꼴라를 새 화분에 심었는데, 문제는 루꼴라는 처음부터 상태가 너무 나빴고, 바질은 한 화분에 다 밀어 심은 것이 문제였던 것 같다. 루꼴라는 계속 힘을 못쓰고 비실거리더니 진디기가 생겼다. 약과 영양제를 사서 뿌려주었는데 힘을 못쓰고 계속 진디기가 생기더라. 며칠을 보살펴주었는데, 영 힘을 못쓸 것 같아서 보내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