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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일상적 성찰 (13)
시시한 삶의 자리의 영광
예수님은 누구신가, 우는 자의 위로와 없는 자의 풍성이며, 천한 자의 높음과 잡힌 자의 놓임되고, 우리 기쁨 되시네.예수님은 우는 자와, 없는 자, 천한 자, 잡힌 자를 위해 오셨다. - 어제 참 당황스러운 대화를 마주했다.예수를 온전히 믿으면 절대 굶어죽지 않는다고, 그런 사람은 평생 살면서 본적이 없다고.예수님을 '온전히' 믿으면 먹고 사는 문제는 분명히 해결해주신다고.나 개인을 보았을 때 그저 편하게 그 말을 믿고 싶지만, 예수를 믿든, 혹 믿지 않든 이 세상에 살아가고 있는 수 많은 병든 자, 가난한 자, 약한 자들이 스쳐지나갔기에 그 말을 '아멘'하고 싶지가 않았다.오늘도 이 한국 땅의 빈민촌에 살아가고 있는 자들과, 추워지는 날씨에 차가운 발을 비벼대는 노숙인들과, 폐지를 모아 하루의 음식을 ..
C.S 루이스의 사랑이야기가 담긴 Shadow Lands 영화에 루이스의 제자가 왜 그렇게 책을 읽어대냐는 루이스의 질문에 " 혼자가 아님을 깨닫기 위해서 읽는다"라고 대답한다. 요즘 나도 혼자가 아님을 깨닫기 위해 책을 '읽어대는' 경우가 자주 있다. 나 혼자 서성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위해 윤동주의 시를 읽는다. 행동하는 지식인이 있다는 것을 깨닫기 위해 장 지글러를 읽는다. 예수 믿는 사람도 슬플 수 있다는 걸, 나의 그리고 그의 낙망과 좌절이 비정상적인 것임이 아님을 깨닫기 위해서 루이스의 '헤아려 본 슬픔'을 읽는다. 그렇게 혼자가 아님을 깨닫기 위해 읽는다. 또 다른 의미로 혼자가 아님을 깨닫기 위해 하는 행동이 하나 더 있다. 바로 봉사활동. 20살 때, 특수학교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슬픔 속 위로_ 레비나스는 고통 받는 타자의 얼굴이 보내는 메시지는 절대자가 보내는 것과 같아서 거부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 요즘, 너무 많은 절대자가 나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자꾸만 밟힌다.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분노한다. 그런데 참으로 감사한 일은 주변에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이 마음을 함께 나누고 있다는 점이다. 용기가 되고 힘이 된다. 나의 한 친구는 고통 받는 타자의 슬픔에 동참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이건 어때,'하며 늘 메시지를 보내온다. 또 어떤 이는 '이 이슈를 가지고 함께 해볼 수 있는 일이 없을까요'하고 물어온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당장에는 별로 없지만 마음을 모을 수 있는 것이 감사하다. 또 어떤 이는, 이러한 이슈들을 곱씹어 고민하여 문제의 기원들과 민낯들을 드러낸..
옥바라지 골목. 아침에 친구가 보내 준 링크를 이제서야 열어서 읽어보았다. 옥바라지, 무슨 뜻인가 했더니만 옥살이 하는 가족들을 뒷바라지 해준다는 '옥바라지'란다. 참 좋아하는 작가, 박완서 선생님도 이곳에서 살았단다. 내가 오늘 하루를 토플공부에, 과외에, 졸업시험에 쫓겨서 오후 5시에 첫 끼를 삼키는 동안 서울 한 켠의 낡아빠진 한 골목의 사람들은 생계를 위해 울부짖었다. 내가 믿는 예수는 이웃사랑을 말했고, 그는 약한 자를 사랑했고, 그는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주었다고, 그래서 내 삶은 오늘의 밥 한끼를 꿀떡 삼키면서도 옥바라지 골목의 여관방 할머니의 삶을 아파해야 마땅함이었다. 그러나 내가 밥숟갈을 들고 꾸역꾸역 김치찌개에 숨겨진 고기를 찾아 먹으며, 부모에게 온 전화를 받았을 때, 나는 옥바라..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_윤동주의 서시의 유명한 한 구절인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라는 말의 의미를 오늘 다시 새겨본다. 죽어가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한다. 쉬이 떠올릴 수 있는 것들이 가난한 자, 병든 자, 난민, 고아와 같은 사회적으로 약한 위치에 놓은 어떤 신분이다. 혹은 말 그대로 육체적으로 죽어가는 어떠한 것들이다. 허나, 이렇게 죽어가는 것들에 대해 정의하는 것이야 말로 참으로 시대적인 가치관에 따른 정의이다.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만한 부를 가진 자들도 죽어가는 자들일 수 있다. 그들만의 고통과 슬픔을 품고 있는 죽어가는 자들일 수 있다. 그들의 고통과 슬픔이 다른 누군가의 그것과 다르며, 어떤 것이 더 크다고 함부로 말할 수 없다. 한 때는, 가진 자들을 그냥 미워했던..
십자가, 윤동주 1연, "쫓아오던 햇빛인데/지금 교회당 꼭대기/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윤동주가 살았던 명동마을 교회당 지붕에 있는 십자가를 그는 늘 바라보았다고 합니다, 2연, "첨탑이 저렇게도 좋은데/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화자의 염려가 있습니다. 십자가에 올라갔던 이가 걸었던 길을 따르기보다는 외면하고 싶습니다. 한계를 느끼는 겁니다. 3연,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종소리가 들려오지 않습니다, 당시 시가 쓰였던 40년대의 상황입니다. 교회는 예언자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희망이 없는 시대에,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립니다. 이러한 서성거림에 꿈을 상실한 자들의 아픔이 배어있습니다. 4연, "괴로웠던 사나이/행복한 예수-그리스도에게/처럼/십자가가 허락된다면 극적..
누가복음 22장 54-71절을 묵상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닭이 세 번 울기 전에 네가 나를 부인 할 것이라고 하셨지만, 베드로는 손사레를 치며 아니라고 대답했다. (나의 상상력 첨가!) 베드로는 참 나와 닮았다. 에너지 넘치고, 큰 소리 뻥뻥 치고, 성격이 다소 급하고, 그리고 예수님을 참 사랑한다는 말을 하며 자신의 자아를 뽐내기도 하는 모습들이 참 닮았다. 예수님께서 잡혀가려고 하는 순간 베드로는 칼을 들어 대제사장의 귀를 자른다. 어쩌면 베드로는 그 때 예수님께서 세 번 부인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을 떠올렸을지 모르겠다. 칼을 들어 귀를 자르는 행위는 '보세요 예수님, 제가 당신을 이렇게 사랑합니다, 저는 부인하지 않는다니까요'말하는 것 같다. 그 사건이 일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베드로는 ..
사람은 자신의 존재를 오직 사회라는 구성물, 그리고 그것을 구성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망 속에서 인식할 수 있다. 사회라는 말이 불편하다면, 환경 정도. 밟고 있는 땅, 머리 위의 하늘, 흐르는 공기의 도움을 받지 않고 사람은 존재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존재를 인식할 수 없다. 땅과 하늘, 공기. 함께 공유하며 살아가는 것들이 다른 존재며, 그리고 그들이 이룬 것이 사회이다.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기 위해 우리는 배운다. 나를 알기 위해 나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나'가 아닌 것을 배운다. '나'가 아닌 것은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언어가, 수학이, 사회가, 과학이, 될 수 있겠다. 그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것을 통한 세상의 이해, 그리고 다시 그것을 통한 나 자신에 대한 이해다. 지금의 시대는 더욱 나에 대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