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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한 삶의 자리의 영광
2016-02-25 왜 배우는가, 본문
사람은 자신의 존재를 오직 사회라는 구성물, 그리고 그것을 구성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망 속에서 인식할 수 있다. 사회라는 말이 불편하다면, 환경 정도. 밟고 있는 땅, 머리 위의 하늘, 흐르는 공기의 도움을 받지 않고 사람은 존재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존재를 인식할 수 없다. 땅과 하늘, 공기. 함께 공유하며 살아가는 것들이 다른 존재며, 그리고 그들이 이룬 것이 사회이다.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기 위해 우리는 배운다. 나를 알기 위해 나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나'가 아닌 것을 배운다. '나'가 아닌 것은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언어가, 수학이, 사회가, 과학이, 될 수 있겠다. 그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것을 통한 세상의 이해, 그리고 다시 그것을 통한 나 자신에 대한 이해다.
지금의 시대는 더욱 나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 사회를 통해 나를 인식한다는 것은, 사회를 인식한다는 것을 전제하며, 그것은 타인의 존재의 불가피성, 필요성 혹은 중요성까지도 배워내는 것이다.
얼마 전 로봇과 사람이 바둑 경기를 벌이는 일이 있었고, 한 신문사는 로봇을 기자로 채용했다. 로봇은 곧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을 것이다. 그것은 분명하다. 지식적인 것에 우위를 가지고 제공하는 방식의 가르침은 언제까지 유용할 것인가. 인간이 로봇과 다르게 배우는 이유는 무엇인가. 로봇이 더 많이 지식을 가질 수 있다면 인간은 왜 배우고, 학교는 왜 존재해야 하며, 더구나 교사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논리적으로 대답할 수 있지만, 가장 논리적인 건 어쩌면 본능일 수도 있겠다. 인간은 무의식 중에 인식하고 있지 않던가, 로봇과 사람이 다르며, 달라야만 한다는 것을? 인간만이 해낼 수 있는 것이 있다고 믿어내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그것이 실제적인 것인지 우리는 배움의 현장에서 결판을 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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