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한 삶의 자리의 영광

2016-03-22 닭이 우는 은혜 본문

일상적 성찰

2016-03-22 닭이 우는 은혜

어린语邻 2016. 3. 23. 00:14

누가복음 22장 54-71절을 묵상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닭이 세 번 울기 전에 네가 나를 부인 할 것이라고 하셨지만, 베드로는 손사레를 치며 아니라고 대답했다. (나의 상상력 첨가!) 베드로는 참 나와 닮았다. 에너지 넘치고, 큰 소리 뻥뻥 치고, 성격이 다소 급하고, 그리고 예수님을 참 사랑한다는 말을 하며 자신의 자아를 뽐내기도 하는 모습들이 참 닮았다. 예수님께서 잡혀가려고 하는 순간 베드로는 칼을 들어 대제사장의 귀를 자른다. 어쩌면 베드로는 그 때 예수님께서 세 번 부인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을 떠올렸을지 모르겠다. 칼을 들어 귀를 자르는 행위는 '보세요 예수님, 제가 당신을 이렇게 사랑합니다, 저는 부인하지 않는다니까요'말하는 것 같다.

그 사건이 일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베드로는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한다.

나는 예수를 모르오,

나는 참으로 모르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것이오?

절대 부인하지 않겠다고 장담하던 베드로, 예수님을 잡아가려는 사람의 귀를 잘랐던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한다. 그것도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하는 순간 베드로는 그것을 깨닫지 못했던 것이 분명하다. 첫 번째에 깨달았다면 그는 그 때 비통하게 울었을 테니 말이다. 나는 얼마나 많은 순간,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하듯이, 나도 깨닫지 못한 채로 예수님을 부인하곤 했을까?

베드로가 세 번째 예수님을 부인하던 순간 닭이 울었다. 그 순간 베드로는 깨달았다. '내가 예수님을 부인했구나.' 그는 그 자리를 떠나 비통하게 울었다. 나의 삶에도 이렇게 닭이 울었던 순간이 있었다. 예수님을 사랑하여 그 안에 거하는 자가 되겠다고 해놓고, 사랑하지 못하여 한 사람과 다투었다. 그 분이 미처 풀리지 않아 답답한 가운데 있는데, 내 귀에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말로다 형용 못하네'라는 찬양이 들려왔다. 그 때 화장실에 들어가 얼마나 비통하게 울었는지 모른다. 하나님의 사랑이 이렇게나 큰데, 나는 그것을 받은 자 되어 어찌 이렇게 살아갈까, 예수님의 십자가가, 흘리신 피가 너무 죄송스러워 학교 화장실에서 한참을 울었다. 울면서 동시에 얼마나 감사했는지. 그 분의 사랑을 알려주신 것에 대한 감사와 그 분을 따르지 못하는 나의 작음, 그리고 연달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향한 신실한 그 사랑이 내 마음을 스쳤다.

베드로도 아마 그 때의 나처럼, 아니 그보다 더 비통히 울었을 거다. 나랑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 같기도 하다. 마음이 쓰리고, 또 부끄러웠겠지만 그래도 미리 말씀하여 주심으로, 닭이 울었을 때 자신의 행위를 깨닫게 해주셨음에 감사한 생각도 들었을 거다. 베드로가 세 번 부인했을 때, 닭이 울지 않았더라면, 베드로는 더 자주- 무의식적으로 예수님을 부인했을터이니…

우리의 삶에서 닭이 우는 것은 정말 큰 은혜다. 예수를 부인한다. 한번, 두 번, 세 번, 그리고 꼬끼오- 닭이 운다. 은혜의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