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한 삶의 자리의 영광

2016-04-03 십자가, 윤동주 본문

일상적 성찰

2016-04-03 십자가, 윤동주

어린语邻 2016. 4. 3. 22:09

   

십자가, 윤동주

   

 


   

1연, "쫓아오던 햇빛인데/지금 교회당 꼭대기/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윤동주가 살았던 명동마을 교회당 지붕에 있는 십자가를 그는 늘 바라보았다고 합니다,

2연, "첨탑이 저렇게도 좋은데/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화자의 염려가 있습니다. 십자가에 올라갔던 이가 걸었던 길을 따르기보다는 외면하고 싶습니다. 한계를 느끼는 겁니다.

3연,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종소리가 들려오지 않습니다, 당시 시가 쓰였던 40년대의 상황입니다. 교회는 예언자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희망이 없는 시대에,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립니다. 이러한 서성거림에 꿈을 상실한 자들의 아픔이 배어있습니다.

4연, "괴로웠던 사나이/행복한 예수-그리스도에게/처럼/십자가가 허락된다면

극적 전환입니다. 예수는 괴로운 행복을 지니고 사는 인물이라고 윤동주는 썼습니다. 괴로움이나 설움은 행복한 사람에게 오랜 지병 같은 겁니다. 독특한 표현이 있습니다. '처럼'을 따로 썼습니다. 이웃을 내 몸'처럼'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는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것이 '행복'한 길임을 알았습니다.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고 싶었던 나약하고 소심한 화자의 자세가 보이지만, 그는 '십자가가 허락된다면'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늘의 뜻에 자신의 의지를 맞추겠다는 다짐입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 이 잔을 피할 수 있다면 피하게 하지만, 주님 뜻대로 하라던 기도가 떠오릅니다)

5연, "모가지를 드리우고/꽃처럼 피어나는 피를/어두워가는 하늘 밑에/조용히 흘리겠습니다"

그는 갈등 끝에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택합니다. 대가나 보상을 바라지 않습니다. 모가지를 드리웁니다. 희생하고자 하는 자세가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그는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피 흘리며 '행복한 예수-그리스도'의 삶을 따라가고자 했습니다.

   

<시로 만나는 윤동주 '처럼' _김응교_문학동네 > 발췌 및 요약, (가로)는 개인적인 생각을 더한 것임.

   

첨탑 끝에 걸린 십자가를 바라봅니다. 그 근처를 서성이며 바라봅니다. 시선이 십자가에 닿습니다. 자꾸만 십자가를 보게 됩니다. 그런데 그 근처에서 저는 지금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고 있습니다. 종소리는 울리지 않는 것일까요, 제가 종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일까요,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윤동주 시인이 '처럼'을 따로 떼어 시에 담아내며, 감히 '처럼'이라는 말을 쓸 수 없어 조심스럽게 단어를 내뱉는 마음이 전해집니다. 4연을 써 내려가는 그의 손이 떨리지 않았을까요? 4연을 읽는 저의 목소리는 떨립니다. '하마르티아', 죄를 뜻하는 이 단어는 본래의 과녘에서 벗어난 것, 이라는 헬라어입니다. 하마르티아 상태에 깊게 잠긴 나의 존재가 감히 그 십자가의 허락됨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허락된다면, 허락된다면, 을 되뇌이고 도무지 5연의 고백을 뱉어낼 수가 없습니다.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모가지를 드리울 수 있는 은혜를 저에게 있길,

   

-김응교 교수님의 윤동주의 삶, 강의를 듣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