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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다/리 뷰

[책] 마음, 나쓰메 소세끼

어린语邻 2019. 5. 20. 01:44

*이 글은, <마음>에 대한 리뷰보다는 이 책을 읽은 시기와 배경에 대한 서술이 더 많습니다.


글은 많이 읽지만 책은 많이 읽지 못한다. 그리고 더구나, 오직 읽기를 위한 읽기를 한 것은 아주 오랜만이다. 대학원 생활을 하면서 나의 대부분의 읽기는 글을 쓰기 위함이라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오래간만에 그저 읽기를 했다. 또 지금은 오래간만에 그저 쓰기를 한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쓰기, 학문적 성취를 위한 쓰기가 아닌, 그냥 쓰기. 

박총의 <읽기의 말들>을 보면, 그는 <종이책 읽기를 권함>의 저자 김무곤이 짚어낸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책읽기'를 찬양한다. 장자의 무용지용. 쓸모없음의 쓸모있음을 떠올린다. 총은, '순수한 쾌락을 위한 독서', 바로 그것이 목적의식으로 오염된 독서를 구원하고, 생산성을 으뜸으로 치는 세상을 구원하리라는, 아주 당돌한 선언을 하기도 한다.

쓰기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무용한 쓰기. 쓰기를 참 좋아했고, 기록함을 참 즐겼다. 대학원생이 되고 쓰기가 두려워졌고, 부담스러워지면서 되려 블로그의 쓰기는 텅텅 비어있었다는 걸, 오랜만의 지금에서야 알아차렸다.

엄마의 사고로 급하게 굴러가던 일이 잠시 멈췄고, 나의 논문도 멈췄다. 잠시 세상이 논문 중심으로 돌아가는 줄로만 착각했던 것 같다. 논문은 잠시 접어두고 '손에 잡히는 책'들을 읽으라는 다정한 지도교수님의 말에 손에 잡힌, <마음>을 읽었다. 

제목을 들으면 참 따스할 것 같더니만, 그렇지 못했다. 상처줌과 받음, 배신과 좌절. 고뇌와 절망. 이런 단어들이 어울리는 무거운 책이었다. 따스한 '마음'이 아니라 치열하고 또 아무도 알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마음에 대한 책.

알 수 없는 한 남학생과 한 남선생과의 만남. 그 선생에 대한 존경과 동경의 마음, 어쩌면 사랑- 그런 것들을 품던 남학생. 선생은 도무지 알 수 없는, 뒷 이야기를 읽기 전까지는 꽤 신비스럽고 가끔은 답답스러운, 그런 행동을 보인다. 결국 그 선생의 행동에 대한 이유는 책의 후반부, 선생이 학생에게 쓴 기나긴 편지에 담겨있다. 그 편지에는 깊은 상처를 받은 선생과 또 깊은 상처를 남긴 선생의 삶이 담긴다. 이 부분을 읽어보면, 결국 사람은 다 똑같고, 내가 비난한 사람처럼 나도 행동한다는, 많이 들어본 이야기를 저자의 오묘하고도 치열한 심리묘사를 통해 발견할 수 있다. 

저자의 의도는 도대체 뭘까, 질문을 던지며 읽었지만 지금은 딱히 모르겠다. 특히 책 분량을 반도 넘게 차지하고 있는 남학생과 선생의 만남. 우연한 만남부터, 일상적 만남과 은근히 드러나는 둘의 긴장들을 저자가 굳이 이 책에 담아낸 이유가 조금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