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한 삶의 자리의 영광

페다고지 / 파울루 프레이리 본문

생각하다/리 뷰

페다고지 / 파울루 프레이리

어린语邻 2017. 9. 14. 18:05
제목/ 페다고지
저자/ 파울루 프레이리
저자정보/ 20세기의 대표적인 교육 사상가. 브라질 빈민지역 레시페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보아온 프레이리에게 민주으이 굶주림과 고통은 언제나 해방의 과제였다. 1950년대부터 문맹퇴치 교육에 활발히 나섰으며, 이를 통해 전세계 피억압 민중 스스로가 사회적, 정치적 자각을 얻을 수 있도록 힘썼다. 1964년 군사정권이 들어서자 체재 전복 혐의로 7년간 투옥되었고, 석방된 뒤에는 1979년까지 망명생활을 하면서 전세계 28개 대학에서 명예교수를 지냈다. 
내용 요약(짧게)/ 의식화. 대화. 위해서가 아니라 힘께.
소감/ 선언적이다. 좋다. 그러나 촘촘하지는 못한 느낌이다. 프레이리의 책이 현실과 연결될 때 촘촘해진다. 

내가 저자(주인공)이라면/ 무서워서 이런 책을 못 썼을 것.

공명하는 글 또는 책/

반짝이는 구절(글귀 모음)/

<저자 서문>

- 의식화 :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모순들을 인식하는 법을 배우고, 현실의 억압적 요소들에 맞서 행동하는 것
p42 의식화는 민중이 역사과정에서 책임있는 주체로 들어갈 수 있게 함으로써 파괴를 피하고 자기 긍정을 모색할 수 있도록 해준다.
- 주체 : 스스로 알고 행동하는 사람. 

p46
인간 해방에 헌신하는 혁명주의자는 현실을 가둬놓는 그러한 '확실성의 원'의 포로가 되지 않는다

<1장>
p52 #주어진 운명이 아니다
이 투쟁이 가능한 이유는 비인간화가 비록 구체적인 역사적 사실이지만, 주어진 운명이 아니라 부정한 질서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 질서가 억압자의 폭력을 낳고, 이 폭력이 또 다시 억압자를 비인간화 시키는 것이다

p53 #허구적 자선
허구적 자선은 두려워하는 자, 억눌린자, '인생의 불합격자'를 핍박하여 떨리는 손을 내밀게 만든다. 진정한 관용은 그 손-개인의 것이든, 전 민중의 것이든-을, 시혜를 바라는 마음에서 내미는 손이 아니라, 일하고 또 일해서 세상을 변혁하는 인간적인 손으로 바꾸도록 하는 데 있다.

p61 #이론에 기반한 실천
주관성과 객관성의 그 같은 상호의존성 안에서만 순수한 프락시스가 가능하며

p63 #대중의 사유
행동에 필수적인 성찰은 루카치가 "대중에게 그들 본연의 행동을 설명하는 것"이라고 말한 필요조건 속에 함축되어 있다
그 필요조건은 민중에게 설명한다기보다는 민중과 더불어 행동에 관해서 대화하는 것이다

p64 #스스로의 목소리
진정으로 해당을 추구하는 교육학은 피억압자로부터 멀리 떨어져 그들을 그저 불운한 사람으로 취급한다거나, 억압자와 경쟁하기 위한 모델을 개발하는 식의 활동에 머물지 않는다. 피억압자는 자신을 되찾기 위한 투쟁에 직접 앞장서야 하는 것이다.
 참된 인간적(인도주의적이 아니라) 관용에 의해 촉발되는 피억압자의 교육학은 인류의 교육학을 대변한다. 억압자의 이기적인 이해관계 (이것은 가부장제의 허구적 관용으로 은폐되어 있다)에서 출발하며, 피억압자를 억압자가 인도주의를 발휘할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교육학은 억압을 유지하고 공고히 한다.

p66
 폭력을 먼저 시작하는 측은 타인을 억압하고, 착취하고, 인간으로서 승인하지 않는 억압자들이지, 억압과 착취와 차별을 당하는 피억압자들이 아니다. 불만을 먼저 터뜨리는 쪽은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아니라 자신만을 사랑하느라 사랑을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다. 테러를 먼저 저지르는 쪽은 테러에 속수무책인 사람들이 아니라 '인생의 불합격자'를 낳는 구체적인 상황을 만들 만한 힘을 지닌 난폭한 사람들이다. 압제를 먼저 시작하는 쪽은 압제의 희생자들이 아니라 압제자들이다. 증오를 먼저 품는 쪽은 경멸당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경멸하는 사람들이다. 인류애를 부정하는 쪽은 인간성을 빼앗긴 사람들이 아니라 인간성을 빼앗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그럼으로써 자신의 인간성도 부정한다). 무력을 사용하는 쪽은 강자의 지배하에 약자가 된 사람들이 아니라 약자를 희생시켜 강자가 된 사람들이다.

p70 #소유=존재가 된 현대
그들은 유산계급으로서 소유를 이기적으로 추구하는 과정에서, 점차 자신들이 그 소유물에 짓눌려 결국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고, 다만 소유만 남을 뿐이라는 점을 알지 못한다.

그들에게 삶이란 곧 소유이며, '가진 자'의 계급에 속하는 것을 의미한다

p73 #피억압자의 실존적 이중성
 자기 자신이면서도 동시에 억압자의 이미지를 내면하고 있는 피억압자의 실존적 이중성.

p75
자신이 무용한 존재라는 믿음

<제2장>
p89
은행 저금식 교육은 학생들의
창조성을 위축시키거나 소멸시키고,
학생들을 단순하게 만들 수 있으므로,
세계를 폭로할 필요도,
변혁할 필요도 느끼지 않는 억압자의 이익에 일치된다

p92 
 생명은 구조적이고 기능적인 성장을 그 특징으로 한다. 그런데 네크로필리형 인간은 성장하지 않는 것, 기계적인 것만을 사랑한다. 네크로필리형 인간은 유기체를 비유기체로 바꾸려 하며, 생명에 대해서 기계적으로 접근하고자 한다. 살아 있는 모든 사람을 마치 사물처럼 여기는 것이다. ...... 경험보다는 기억이, 존재보다는 소유가 더 중요한 것이 된다. 네크로필리형 인간은 반드시 대상-이를테면 꽃이나 사람-을 소유해야만 그것과 관계를 맺을 수 있다. 그러므로 그 소유를 위협하는 것은 곧 그 자신을 위협하는 것이다. 소유를 잃으면 그는 세계와의 접촉을 잃게 된다. ........그는 지배를 사랑하며, 지배행위로써 생명을 죽인다.
_에리히 프롬 <인간의 마음> 발췌

p93
 무기력에서 비롯되는 이 고통은 인간적 평형이 깨어졌다는 바로 그 사실에 뿌리박고 있다

<제3장>

p106 #세계에 이름짓기
 오직 참된 말로만 인간은 세계를 변화시킨다. 인간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세계를 이름짓고 변화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이름지어진 세계는 다시 인간에게 문제로서 나타나며, 새로운 이름짓기를 요구한다. 인간존재는 침묵 속에서 성장하는 게 아니라 말과 일과 행동-성찰 속에서 성장한다.

p129
 연구는 가장 비판적일 때 가장 교육적이며, 현실을 파편화하거나 '집중화'하는 편협한 요약을 피하고 총체적 현실을 파악하려 할 때 가장 비판적이다. 따라서 유의미한 주제의 탐색 과정에는 주제들 간의 연결에 대한 관심이 포함되어야 한다. 이는 곧 주제를 문제로서 제시하고 주제를 역사적-문화적 맥락에서 바라보는 관심을 뜻한다.


<제4장>

p150 #자신의 방법과 목적간의 모순
 피억압자의 프락시스를 부정하는 지도부는 그럼으로써 자신의 프락시스마저도 무효화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말을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함으로써 그들은 그 말을 허구화하고, 자신의 방법과 목적간의 모순을 빚는다.

p152
민중과의 대화는 모든 참된 혁명에 필수적이다

p153
행동과 성찰은 동시에 일어난다

p154
 어떤 이들은 대화-세계를 변혁하기 위한 사람들의 만남-를 받아들이면서 소박하고 주관적인 관념론에 빠지게 될지도 모른다고 걱정한다. 그러나 인간보다 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것은 없다.

<정복>
p165
억압의 객관적인 상황 속에서 반대화는 억압자에게 더 큰 억압-경제적 억압이 아니라 문화적 억압-을 위한 수단으로서 필수적이다. 즉 피정복자는 자신의 말과 표현력과 문화를 빼앗긴다
................... 억압자는 세계를 '고찰'하는 피억압자의 능력을 파괴하고자 한다. 그러나 억압자는 그 파괴를 완전히 수행할 수 없기 때문에 세계를 신화화해야만 한다.

p166 #신화 #개발협력
억압자의 입장에서는 정복을 통해 민중이 계속 수동적인 상태로 남아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 방법은 민중과 더불어 사랑가는 것을 포함하지 않고 지정한 의사소통을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그 대신 억압자는 현상유지에 반드시 필요한 신화를 저축시키는 방법을 구사한다. 예를 드어 억압적 질서가 '자유로운 사회'라는 신화, 모든 사람이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일하며, 따라서 직장상사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 직장을 떠나 다른 일자리를 찾을 수 있다는 신화, 현 질서는 인권을 존중하므로 정당하고 올바르다는 신화, 근면하기만 하면 누구나 기업가가 될 수 있다는 신화 등이 그것이다. 그밖에 더 나쁜 신화들도 많다. 노점상고 대규모 공장주에 못지 않은 기업가라는 신화, 브라질의 모든 초등학생 중에 대학까지 진학하는 학생은 극히 일부인데도 교육의 보편적 권리가 보장되고 있다는 신화, "내가 누군지 알아?"하는 식의 말이 여전히 통용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개인이 평등하다는 신화, 억압 계급이 '호전적 야만주의'에 맞서 '서구 그리스도교 문명'을 수호하는 영웅이라는 신화, 실제로 계급으로서 하는 일은 선택적인 '선행'에 불과한 엘리트가 자선과 관용을 베푼다는 신화 [14], '자신들의 의무를 인식한' 지배 엘리트가 민중의 지위를 향상시킨 겨로가 민중이 감사하는 자세로 엘리트의 말을 받아들이고 온순하게 따른다는 신화, 반역은 신에게도 죄를 짓는 것이라는 신화, (실은 억압자만이 참된 인간으로 간주되면서도) 사유재산이 인간의 개인적 발전에 근본적인 역할을 한다는 신화, 억압자는 근면하며 피억압자는 게으르고 부정직하다는 신화, 피억압자는 본성적으로 열등하며 억압자는 우월하다는 신화 등등.
[14] '게다가 경제적으로 발전한 나라들은 특별한 배려를 해야 합니다. 가난한 나라들을 원조하면서 실은 현재의 그 정치적 상황을 자신들의 이익에 맞도록 바꾸고 그들을 지배하려 한다는 이야기를 듣지 않으려면 말입니다. 만약 그러한 시도를 한다면 그것은 분명히 식민주의의 또 다른 형태 외에 다름아닐 것입니다. 비록 이름은 다를지라도 그것은 지금 많은 나라에서 포기된 낡고 케케묵은 지배권을 반역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국제 관꼐가 저해되면 모든 민족의 고른 진보가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교황 요한 23세 <그리스도교와 사회진보>, 회직 mater et magistra, 171조 및 172조

<분할통치>

p173
이 허구적 관용을 통해 그는 부당한 네크로필리아적 질서를 온존하려 할 뿐 아니라 자신의 평화를 돈으로 '사려' 한다. 하지만 평화는 돈으로 살 수 없다. 평화는 연대감과 사랑의 행동에서만 경험되므로 억압 상태에서는 발현되지 않는다.


<조작>

p175
민중이 단순한 구경꾼이 아니라 처음으로 적극성을 띠고 역사 과정에 등장하면 지배 엘리트는 크게 당황하여 조작의 책략을 부리게 된다.

<문화침략>

p180
문화정복은 침략당하는 사람들의 문화적 정체성을 파괴하므로 피침략자는 침략자의 가치관, 기준, 목표를 따르게 된다.
.............현실을 바라볼 때 자신의 관점이 아닌 침략자의 관점을 취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화적 문화활동의 이론-------------
<협동>
협동은 주체들 사이에서만 가능하다

p202
게바라는 민중과의 친교가 '무의식적이고 다손 낭만적이었던 각오'를 '명료한 힘으로, 전혀 다른 하나의 가치로' 변화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해방을 위한 단결>
p206
피억압자를 단결시키려면 그들로 하여금 현실에 고착되도록 만든 이유와 과정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문화 활동, 즉 탈이데올리기화 작업이 필요하다.

p207
 '구호'에만 의존하면서 근본적 측면들은 다루지 않는 행동주의 방법으로써 농민을 단결시키려 할 경우에는, 단지 개인들의 병렬만 만들 수 있을 뿐이며, 농민의 행동도 순전히 기계적인 성격만 지니게 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