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한 삶의 자리의 영광

2015-12-08 빈곤의 인류학 수업을 마치고 본문

일상적 성찰

2015-12-08 빈곤의 인류학 수업을 마치고

어린语邻 2015. 12. 8. 19:34



다음 주 시험 앞두고 오늘 수업 하나가 종강을 했다. 7학기 동안 학교를 다니고 수업을 들으면서 재미있는 수업은 있었지만, 오늘처럼 수업이 끝날라 치니 마음 한 켠이 아릿아릿하고, 교수님의 재미없는 농담이 슬프기까지 한 수업은 처음이다.
 
수업의 첫 시간부터 끝날 때까지, 이것 이러하다, 라고 알려주는 건 하나 없이 ‘생각해보라’며 질문만 던지고 마치는 수업은, 매번 내 머리와 마음에 마음에 수많은 물음표를 남겼고, 이것들을 도무지 처리할 수 없어 괴로운 적이 많았다.

매주 읽어야 하는 리딩자료들과 그것을 기반으로 써야 하는 나의 이야기들은 정말 '토사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정제되지 못한 것들이었지만, 적어도 토사물들을 보니 내가 뭘 먹고 토했는지는 알겠다.


매 주마다 하루살이마냥 간신히 글을 써냈던 수업이었고, 읽어도 읽어도 한국말인데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을 다시 밑줄 쳐가며 읽을 땐, 난 바본가, 난 왜 멍청한가, 스스로 자괴감에 빠지며 좌절하기도 많이 했다.

나는 학자가 싫었다. 공부하는 사람이 싫었었다. 스스로 나는 ‘현장체질’이라고 이름 붙인 채로, 현장을 모르고 책상에서 탁상공론하는 자들의 위선이 싫었다. 책으로만 배우고, 현장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학문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고, 배운 자들의 권위의식과 그들이 가진 권위와 권력을 자신들을 위해서만 사용하는 것이 싫었다.

 한 편으로는 동시에, 내가 그런 사람이 될까 두려웠다. 내가 머리 속을 지식으로 채우면 채울수록, 그렇지 못한 자들, 삶의 자리에서 하루하루 싸워나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꼰대처럼 지식화만 시키고 그것을 팔아내며 먹고 사는 사람이 될까 두려웠다. 교만해질 것 같은,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게 될 것 같은 사람이 될까 두려웠다.

 그런데 이 수업을 들으면서 많은 부분의 생각이 바뀌었다. 나의 치열한 배움이, 현장에서 싸우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줄 수도 있겠다. 현장과 학문은 이분화 된 것이 아닌 것 같다. 마치 제로섬게임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어떤 것보다 win-win이 될 수 있는 사이. 현장이든 책상이든 어디에 있든 오늘 배운 것 잊지 말아야겠다.



2015-12-08 빈곤의 인류학 수업(조문영)을 마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