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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 성찰

한국생활과 고민들

어린语邻 2015. 10. 20. 21:02

2015.10.20 

 

한국에서 1년 만에 다시 맞이하는 시험기간이다. 늘 그렇듯, 시험기간이라고 특별히 바쁘지는 않다. 다만 마음만 살짝 긴장되고, 열심히 공부하는 주변 사람들에 발 맞추어 도서관에서 조금의 시간을 더 보낼 뿐이다. 어차피 나는 급하게 머리 속에 정보를 집어넣어 공부할 수 있는 종류의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 주에는 봉사활동을 다녀오는 길에 버스에서 김밥과 음료수를 먹다가 흘리고 말았는데, 그 순간 내가 한국에 있다는 것을 문득 자각하고야 말았다. 삶의 대부분을 보냈던 한국인데, 여전히 적응이 안 되는 듯한 기분이 참 이상하다.

 

그래도 학교는 너무 즐겁다. 학교를 다니는 것이 지루하지 않냐는 친구의 질문에, 재미있는 수업 몇 가지만 있으면 힘이 난다고 했다. 이번 학기는 단연 '빈곤의 인류학' 수업이 배움의 기쁨과 괴로움을 동시에 선사하고 있다. 처음 듣는 인류학 수업과 쪽글이라는 과제, 그리고 매주 주어 지는 리딩자료는 매번 나의 한계를 테스트하고 있다. 학점이 매우 걱정스럽지만 새로운 것을 배워가고, 사유함을 자극하는 수업이 몹시 즐겁다. 그리고 쉽게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물을 넘듯이 아찔하게 공부하는 것도 재미있는 작업이다. 또한 기대했던 '교육의 인류학적 탐구'라는 수업은 지난 국제이해교육 수업 만큼은 아니지만 또 다른 생생함이 되어서 다가오고 있다. 꼭 한 번 들어보고 싶었던 프랑스어 논리와 요약 수업은 요약을 '종합적 예술'이라고 칭하시는 교수님과 함께 매주 예술을 하고 있다.

아프리카에 푸-욱 빠져서 헤어나지 못했던 지난 몇 년, 뜻하지 않는 시점에 아프리카인사이트에서 나오게 되면서 다양한 접근을 다시 시도해보면서 앞으로의 그림을 그려보려 하고 있다. 미사여구를 없애고, 나는 아프리카를 비롯한 사회에서 소외된 자들의 삶을 위한 무엇인가를 하고 싶다. '소외'라는 범주화를 시작하는 순간 그들과의 권력관계가 설정되고, 그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고 싶다는 말이 나의 교만함을 드러낼 수 있다는 등의 논쟁은 잠시 접어두고 싶다. 그 부분에 대해서 고민을 멈춘 것은 아니라는 사실로 이 이슈를 잠시 뒤로 미루고 좀 단순하게 다시 생각해보고 싶다는 거다.

이전부터 이야기했던 것이지만, 내가 공부를 하고 싶은 이유는 실수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했다. 내가 그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고 싶다고 생각하여 행동으로 옮길 때 정말 그것이 플러스 효과를 내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짧지만 많은 현장활동가들을 통해 다양한 관점의 현장 이야기들을 들었다. 이전에는 옳다고 생각되었던 패러다임들이 비판 받고 새로운 패러다임들이 등장한다. 하다못해 원조에 관련한 이슈도 그러하다. 제프리 삭스(원조옹호론)와 담비사모요(원조회의론)의 의견은 양극이다. 두 명의 책을 읽을 때마다 나의 마음은 갈대처럼 흔들린다. 이 말도 맞는 것 같고 저 말도 맞는 것 같다. 참 어려운 것은, 그래서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아프리카에서 교육으로 관심사가 구체화됨과 동시에 재조명/확장되었다고도 볼 수 있는데, 그 이슈를 가지고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할 건가.

사실 단순히 생각해서 이것을 공부해서, 저러한 일을 하겠다는 식으로 결정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눈에 보이는 선택지들이 있고, 그 중 선택을 하면 된다. 그런데 지금 나는 좀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싶은 것이다. 내가 추구하는 사회의 모습, 내가 그리는 교육현장의 모습, 아프리카 개발 원조의 방식은 무엇이냐는 말이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내가 무엇을 공부하여 기여할 수 있을 것인가!

그래도 한국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나의 삶에서 나름의 대안적인 방안들을 찾아가면서 시작을 보내고 있다. 벌써부터 방학을 하고 싶고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담뿍담뿍이다만, 겨울에는 한국에 머무르면서 라브리 공동체에서 시간을 보내보려고 한다. 신촌 한 복판의 끊이지 않는 소음에서 잠시 떨어지고 싶다.

폭발할 것 같은 많은 고민들을 풀어낼 수 있는 열쇠는 늘 그렇듯 다시 하나님의 시선으로 그 모든 것을 바라보는 것이겠지..! 몽글몽글 솟아나는 고민들과 삶의 작은 갈등과 상심들 속에서도 예수님, 예수님, 다시 그 분을 따르는 제자로서 발버둥이라도 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하나님이 쓰시는 역사 속에서, 그 분이 쓰시기에 아주 편안한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