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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다/평화교육

2014 02 18 교문중학교 학생들과 함께하는 평화교육

어린语邻 2014. 2. 25. 16:00

교문중학교 학생들과 함께하는 평화교육







  1. 참가자 : 교문중학교 예비 1학년 9개반
  2. 교육일정 : 2월 18일 오전9-12, 오후1-4
  3. 장소 : 교문중학교
  4. 함께 진행한 사람 : 전세현, 강예린, 문아영, 신정식
  5. 교육안 : 

여는활동(원으로 모여앉기, 소개+모드셋팅, 번개토론, 큰바람이 불어와)

본활동1(텔레파시활동-말하는대로,온 마음으로 듣기, 활동성찰)

본활동2(난 이렇게 할 수 있다, 일상 속 폭력 키워드 찾기, 정지적 활동, 폭력은 ooo이다.)

본활동3(평화편지 쓰기)

마무리(종합 성찰 및 마무리)


■ 나와 교육

 어릴 적 부터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에 대해서 매력을 많이 느끼곤 했었고, 실제로 잠깐 동안은 교사에 대한 꿈을 갖기도 했습니다.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중,고등학생들 을 대상으로 과외를 한 적도 있었습니다. 약 4개월 동안 초등학교 방과후 교실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수업을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교육은 저에게 매력적이었던 것임에도 불구하고 저는 '교육하는 경험'을 되풀이 되면서 저랑은 맞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첫 째로는 학생들을 대하는 방법을 전혀 몰랐기 때문에, 학생들의 심리를 이해하고 통제하고 다루는 것에 서툴러 금방 지치곤 했습니다. 고등학생의 경우에는 그 때의 기억이나 감성이 남아있기 때문에 그래도 괜찮았는데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학생들의 경우에는 정말 많이 당황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짜증기 나기도 했어요. 

 또 다른 이유로는 현재 이미 정착되어 있는 한국교육 체제와 분위기에 순응하며 가르쳐야만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학생시절, 그 안에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며 순종적으로 공부를 하며 그 안에서 기쁨을 느끼기도 했고,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에 불편함을 느끼며 억지로 공부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적어도, 저는 한국교육 제도에 대해서 많이 불편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단 교육을 시작하게 되면, 학생들에게 다른 것보다 무조건 공부만, 공부만을 외치며 지도해야만 했습니다. 저는 그것에 대해서 스스로 모순을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정말 불편했습니다. 

 

■ 나와 평화교육

 제가 가지고 있는 이 2가지 이유를 보완해주는 교육이 이번 '평화교육'이었습니다. 

길지는 않지만 집중적인 교육을 통해서 학생들을 대하는 방법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또한 혼자 교육을 진행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함께 진행하는 선생님의 모습을 보는 것 자체가 하나의 교본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배운 것들을 토대로 수업을 진행하니 더욱 안정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평화교육은 저에게 불편함을 주었던 일반적인 한국교육의 모습과는 상당히 다른 형태를 띄고 있기에 제가 가지고 있는 불편함을 되려 해소시킬 수 있었습니다. 이번 교육에서 한 학생이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학교 수업도 이랬으면 좋겠어요.'

 '응? 어떤 면에서 그래요?'

 '창의적이고, 개방적이고..'


저는 고등학생이 되도록 이 교육에 대해서 불편함을 전혀 느끼지 못했었는데, 이미 느끼고 있는 친구들이 있다는 점이 놀랍기도 했고 한 편으로는 더 좋은 교육을 선물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비주류?

 일반적인 한국의 학교교육에서 창의적인 수업, 참여적 수업, 개방적 수업, 소통의 수업 (그 형식만 그런 것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에서의) 을 경험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한 교육에 불편함을 느끼는 학생들이 선택하는 방법 중 하나가 '대안학교'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대안학교'라고 하면, 문제아들이 가는 학교이거나 뒤쳐진 아이들이 가는 학교로 인식되어 지는 것 같더군요. 주류보다는 비주류로 인식되어기도 하고요.

 평화교육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아직까지는 이런 방식으로 교육을 진행하는 것에 대해서 되려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배우는 학생들도 익숙하지 않은 방법에 대해서 불편해합니다. 앞으로는 이러한 방식이 한국에서도 자연스러운 방식이 되기를 소망해봅니다 ^_^




 

교사가 학생보다 많은 것을 알고 지적인 우위에 서서 계몽적인 가르침을 할 수 있는 시대는 종언을 고하고 있다. 아마도 그런 역할에서 휴먼로이드 로봇은 인간의 능력을 곧 뛰어넘을지 모른다. 이런 시대에 인간 교사가 할 수 있고 해야 할 유일한 인간적인 활동은 배우는 삶이 가치있고 추구할 만한 것이며, 그러므로 그런 삶을 살도록 학생들의 의지를 각성시키는 것이 아닐까? 인간에게 주어진 보편적 능력을 신뢰하고 배움의 의지를 작동시키는 탈 근대의 꿈을 향해 교사들은 가르치기를 잠시 멈추고, 스스로가 학습하기를 즐기는 존재인지를 자문할 필요가 있다. 이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할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우리 자녀들을 로봇이 아닌 인간이 가르쳐야 하는지에 대한 문명사적 의문에 대해서 답할 수 있는 용기를 얻는 셈이다. 당신은 어떤 교사인가?


누구나 경험사지만 누구도 잘 모르는 수업 (이혁규의 교실 수업이야기) _교육공동체 벗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