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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읽는 철학_라캉의 구조주의

어린语邻 2016. 6. 21. 23:22

자끄 라캉 (Jacques Lacan)_1901-1981

철학자, 전 대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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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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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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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정신의학자. 구조언어학을 정신분석에 적용하였다. 68혁명 이후 지식인들의 관심을 받았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구조주와 언어학의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그러한 해석을 통하여 인간에 대한 철학적 접근을 시도한 일종의 또 다른 정신분석학으로 독창성을 인정받았다. 1966년에 그의 에세이와 강의 내용이 담긴 논문집 『에크리』(Ecrits)가 출간되면서 유명인사가 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라캉 [Jacques Lacan] (철학사전, 2009., 중원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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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더니즘의 대표적인 철학자로 사르트르의 Kid라고 불린다. (구조주의자체가 처음 시작점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 속에서 발생된 의미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실존주의 철학인 사르트르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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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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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와P가 있다고 보자. 이 각각은 처음부터 고유의 의미를 가진 것이 아니라 P와 다른 B가 의미를 갖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언어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사회적인 의미도 처음부터 의미가 부여된 것이 아니라 다른 것과의 관계, 즉 구조 속에서 의미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도둑 맞은 편지(아래 내용 있음) 에서도, 편지의 내용은 나오지 않는다. 다만 그 관계에서 편지의 의미가 달라진다. 예전에는 글에 대한 작가의 의미를 파악하고자 했다면 이제는 그것이 아니다. 작가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썼는지는 중요하지 않으며, 누가 언제 그 텍스트를 읽었느냐가 중요하다.

   

   

1. 해석학에서 벗어남

서양의 전통적인 인문학은 어떤 것을 보고 그거에 대한 신의 뜻을 파악하는 것이었다. 즉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고, 작곡가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다. 라깡은 거기서 벗어난다. (신학적인 해석학x)

   

2. 기표와 기의

1) 기표 : 시니피앙. 의미를 나타내다.

2) 기의 : 시니피에. 의미하는 바.

ex) 모짜르트의 음악자체는 기표,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기의.

스마트콘 네글자는 기표, 실제 스마트폰은 기의

빨간색 신호등은 기표, 빨간색 신호등을 켜면 멈춘다는 기의

   

- 기표와 기의의 결합으로 '언어'가 이루어진다. 두 가지의 결합이 하나의 시스템을 만들어 낸 것이 언어이다. 필연적으로 의미가 부여될 이유는 없으며, 각 사회마다 관습에 의해서 합의하는 것이다. 즉 '본질적인 측면'이 무너진다.

- 소쉬르는 기표보다 '기의'를 더 중요시한다. 그러나 라깡은 기의가 아니라 '기표'가 중요하다. 전통적인 서양철학은 항상 기의를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즉, 피카소가 그린 그림(기표)를 보고 그 의미(기의)를 찾아내는 것이 과거에는 중요과제였다. 그러나 라깡은 기표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기표가 어디에 위치하느냐에 따라서 의미가 다르게 발생한다는 것이다. 단 하나의 기의가 있는 것이 아니다.

ex) 사람마다 책을 보면 의미가 다르고, 심지어 '나'라는 사람도 언제 그 책을 보냐에 따라서 다른 의미를 포착한다.

   

3. 바둑과 비교해보기

- 장기와 체스는 각각의 말이 기의(시니피에)가 정해져 있어서 나타낼 수 있는 경우의 수가 한정적이다. 반면 바둑알은 기표만 가질 뿐 '기의'를 갖지 않는다. 따라서 경우의 수가 무한대이다. 기표만 가지고 있는 '바둑알'은 바둑판이라는 '구조'아래에서 의미가 발생하는 것이다. 즉, 의미가 없는 기표가 구조(바둑판)으로 들어감으로 의미가 생긴다. 바둑돌은 언제, 어디에 놓이느냐에 따라서 의미가 달라지지만, 동시에 주변 바둑알이 어떻게 놓여있느냐에 따라서도 의미가 달라진다. 따라서 도둑맞는 편지에서 편지는 기표이지만 그 주변 사람들은 또 다른 기표로서 작동한다. 편지는 어떤 의미도 없는 기표일 뿐이고, 누구의 손에 있느냐에 따라서 상황정체와 편지(기표)의 의미(기의)가 달라지는 것이다.

   

4. 프로이드와 비교

- 프로이드는 억압된 욕망이 있고, 그것의 실체를 찾고자 했다. 즉 프로이드는 기표에 담긴 기의를 고민한 것이다. 그러나 라깡은 욕망이라는 개념자체가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결핍이라고 보았다. 과거에는 욕망(desir)라고 하면 실체, 즉 기의(시니피에)가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라깡은 '요구-필요=욕망'이라고 보았다.

예를 들면, 아기가 운다. 그래서 엄마가 젖을 준다. (필요충족) 아기가 우는 것은 배고픔이라는 필요가 있었지만 아기가 우는 것과 배고픔은 등가가 아니다. 즉 요구-필요를 한다고 해서 '0'이 나오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이렇듯 항상 결핍을 가지고, 그것이 '욕망'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즉 프로이드가 했듯이 '인간은 항상 성적욕망이 있다' 처럼 정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라깡의 이 결핍에 대한 이야기는 인간은 무엇을 가져도 결코 충족될 수 없다는 점에서 신학적인 관점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라깡이 이 원초적인 트라우마를 설명하는 방식은 다르다. 그는 아기가 엄마 뱃속에서 완벽한 상태로 존재하다가 태어나면서 엄마와 단절되는 순간 원초적인 트라우마를 갖게 된다고 설명한다. (본질적인 단절의 트라우마) 그래서 그 트라우마 이후에는 무엇을 가져도 결핍이 있다는 것이다.

   

5. 롤랑 바르트

- 롤랑 바르트는 문학비평가였다. 그는 '저자를 죽이는' 작업을 하였다. 저자가 텍스트를 내어 놓는 것은 '기표'를 생산하는 것이다. 기표가 세상에 던져지면 '기의'를 생산하는 것은 독자이다. 그는 진정한 문학 비평은 저자를 죽이는 것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그에게 있어서 저자는 auteur가 아니라 scripteur가 된다. 저자가 대단한 영감을 받아서 작품을 창작한 것이 아니라 단지 필사자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상호텍스트성intertextualite를 말한다. 모든 작가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텍스트들을 다시 조합해서 다시 텍스트를 만들어내는 것일 뿐이다. 모든 작품은 텍스트들끼리 영향을 주고 받아서 등장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논의에 따르면 저작권은 없어야 하는 것이다. 더 이상 작품(oeuvre)가 아니라 texte이다.

이러한 롤랑 바르트의 관점은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이 있다. 일단 해석이 자유롭고 무한해진다는 점, 그리고 민주적이라는 점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중심을 해체하고 작가를 죽이는 것은 자칫하면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사실 롤랑 바르트도 결국엔 auteur가 되길 원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프랑스는 여전히 저작권이 있다)

   

6. 데카르트, 플라톤 사상과의 반대. 그러나 신학적인 도식의 존재.

작가가 작품을 창작한다. 독자들에게 준다. 독자들이 작가의 죽음을 선포한다. 작품을 독자들의 것으로 만든다. (엉망이 된다)

= 신이 세상을 창조한다. 인간에게 준다. 인간이 신의 죽음을 선포한다. 세상을 인간의 것으로 선포한다. (엉망이 된다) !!

   

7. 구조주의, 그 이후

절대성이 사라지는 세상,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포스트모던) 편해 보이지만 정말 그러한가? 뒤샹의 작품 중에 유명한 변기통을 가져다 놓은 작품이 있다. 그는 어느 것이든 예술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작품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 작품이 엄청난 가격에 팔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뒤샹'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포스트 모더니즘에 따르면 그것은 저작권이 없어야 하고, 저자는 작품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지 말아야 하는데, 결국 작가가 다시 살아난다.

분명, 해체는 필요하다. 과도한 권위는 깨져야 한다. 하지만 모든 것을 다 해체할 수는 없는 법이다. 해체할 영역과 해체하지 않을 영역을 구분할 지혜가 우리에게 필요하다.

   

   

   

   

   

e.g. 교수님은 건강한 해체의 예시로 무한도전을 말했다. 유재석이라는 인물은 개인이 무한도전의 의미를 다 만들지 않는다. 각각의 멤버들에게 캐릭터를 부여하고, 각각의 의미를 창조할 수 있도록 돕는다. 프로그램에서 '유재석만'드러난 적이 있었던가? 거의 없다. 하지만 유재석이 그 프로그램에서 빠지면 어떨 것 같은가? 바로 그거다. 잔잔한 중심을 유지하면서 각각의 의미도 소중히 여기는 것.

   

+) 라깡과 페미니즘 : 라깡이 아버지의 권위를 해체했기 때문에 페미니즘에 기여했다는 말이 있다. (아버지라는 전통적으로 강한 권위를 해체)

   

+2) 성경해석의 변화 : 과거(종교개혁 전)에는 성경에 대해서 강론할 때 교황청에서 내려오는 강론을 그대로 읽어야 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원작(canon)의 근원적인 의미를 해체하지 않는 한에서 다양성이 발생하는 것이다. 단 하나의 시니피에를 강요하지 않는다.

   

+3) 서양 사회는 오랜 시간 동안 데카르트와 플라톤의 사상에 눌려있었다. 그래서 과격하게 나온 경향이 없잖아 있다.

   

   

정리.

On pourrait résumer le structuralisme en disant que nous ne parlons pas, mais que nous sommes parlés. Nous sommes parlés par nos désirs et notre corps. Nous sommes parlés par les jeux de relations sociales dans lesquelles nous somees inscrits. Nous somme parlés par les savoirs et les représentations exprimant les pratiques dans l'<air du temps>

(해석) 우리는 구조주의를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우리가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말해지는 것이라고 말이다. 우리는 우리의 욕망과 몸에 의해서 말해진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그 속에 가입되어 있는 사회적 관계들의 유희에 의해 말해진다. 우리는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실천들을 표현하는 지식과 표상들에 의해서 말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