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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읽는 철학_데카르트 : 근대적 주체의 탄생 본문

생각하다/철 학

쉽게 읽는 철학_데카르트 : 근대적 주체의 탄생

어린语邻 2016. 6. 21. 23:20

데카르트 (Descartes, René)

프랑스의 수학자ㆍ철학자(1596~1650).

근대 철학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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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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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법서설(1637)

   

   

근대 철학의 창시자

   

1. 시대적 배경

   

1) 르네상스 (14~16세기)

2) 신의 관념의 약화

3) 가톨릭 교회의 무너짐

-        중세시대의 모든 권력의 중심이었던, (고정점 point fixe) 가톨릭 교회에서 옳다고 주장한 것들이 과학적으로 옳지 않다는 것이 증명되면서 고정점이 흔들리게 된다. 혼란이 찾아온다. 근대는 끊임없이 확실한 토대를 요구하던 시대였다. 내가 서 있는 곳은 탄탄한가?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은 정당화될 수 있는가? 정당성에 대한 물음을 제기하고 확실성을 추구하는 것이 근대의 특징이다.

e.g. 세계는 평평하다 – 콜롬버스에 의해 증명, 갈릴레이, 뉴턴의 등장

-        즉, 사회적 진리의 중심이었던 교회의 역할이 해체되면서 혼란이 찾아온 것이다.

-        또한 16세기 종교개혁을 거치면서 성서가 번역되어 봉인이 풀린다.

-        이 Point fixe가 사라지면서 모든 것을 상대적으로 보아야 하는가 ? 진리는 있는가 ? 의 의문이 생김.

   

# 종교개혁과 문학적 바로크의 탄생

-        개신교(신교)와 가톨릭(구교)의 교리 싸움.

-        신교는 '성경'의 권위를 획득 : 성경 번역

구교는 '예술'의 권위를 획득 : 바로크 문화의 등장 (기교, 장엄함)

-        문학적 바로크 : 개신교적인 것.

끊임없이 망설이고 두려워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 종교개혁이 시작되면서 서로 나누기 시작하고, 각자 옳다고 생각하는 진리를 따라서 가는데, 뭐가 맞는지 사람들도 판단을 확실히 세우지 못해서 계속해서 불안해 함. 예전처럼 가톨릭 교회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고 판단해주지 않고, 개인이 책임을 지게 됨. 예전에는 죄를 지으면 신부에게 가서 해결하면 되는데 이제는 하나님 앞에서 단독으로 서야 함. (신교적) 이것이 인문학적인 바로크에 영향을 미친 것임.

e.g. 셰익스피어의 햄릿(햄릿이 계속 우유부단하고 망설이는 것)

햄릿이 유학가 있다가 아버지가 돌아갔다는 소식을 듣고 돌아옴. 유학 갔다가 햄릿이 비텐베르크 대학에서 돌아왔다고 적혀있음. 그 비텐베르크 성당은 루터가 92개조 반박문을 썼던 곳이었음. 즉, 햄릿은 신교도들의 심리상태를 그대로 대변하는 것임.

   

2. 데카르트의 '방법' : 모든 것을 의심하라 _근대 지식의 기초

의심할 수 없을 정도로 확실한 것 외에는 아무것도 수용하지 말라는 것이 데카르트의 첫 번째 방법이다. 즉 의심을 지식의 시작으로 본다. 모든 것을 의심하는 것에는 나의 감각도 포함이 되어있다. 악령(감각)에 속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이렇게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의심할 수 없다. 속임을 당하는 것도 의식이 있기 때문인 것이다. 그렇게 나는 '생각하는 존재'가 된다.

하지만 데카르트는 그 '의식'을 우상화하지 않았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라고 말할 수는 있지만 '나는 생각했다, 그러므로 존재했다'라던가 '나는 생각할 것이다, 그러므로 존재할 것이다'라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지금 내가 생각하고 있다는 것일 뿐이지 과거나 미래시점에서의 나의 존재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즉 인간은 시간성 안에 제한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데카르트는 애초에 무한한 능력으로 내가 창조되었기에 존재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신이 없다면 나는 존재가 불가능한 것이다.

   

   

   

   

3. 데카르트의 신 존재 증명

<성찰> 에 의하면, 진리의 일반규칙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악마가 아니라 선한 신의 존재가 전제되어야 한다. 만일 신이 존재하지 않고 악마가 존재하여 나를 속인다면, 진리의 일반적 규칙을 적용하여 얻은 인식도 진리일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즉, 기만하지 않는 신이 우리를 창조했다는 전제 아래에서만 진리의 규칙에 따라 인식하는 모든 다른 명제들이 진리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동굴 안에 있는 것을 보면서 감각으로 그것을 인식할 수 있다. 동굴 안의 사람들은 불완전한 동굴 안을 보면서 '완벽한 세상이라면 이럴 텐데' 라며 상상할 수 있다. (동굴 안의 세상=지금 인간이 사는 세상) 그렇다면 내가 살아가는 세상이 완벽하지 않다고 믿는 것은 무엇이냐 ? 그것은 진짜 완벽한 무엇인가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 아닌가. 사람들의 생각 속에 '이러면 안 된다'는 이데아에 대한 인식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들이 사는 세상에서는 한 번도 완벽한 모델의 어떤 것이 존재한 적이 없다. 경험적으로는 이데아를 알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눈에 보이는 현실을 보면서 그것이 완벽하지 못함을 느낀다. 데카르트의 '영원' eternel의 개념이 있는데, 인간의 세상에는 Eternal영원하고 , infinit무한한 것이 없다, 이것이 어떻게 모든 인간의 관념 속에 있는가 ? 한 번도 인간 세상에 존재한 적이 없었던 그것이, 실재로 존재하기 때문에 인간의 그 관념을 가지고 있다는 데카르트의 논증이다. 즉 신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그 관념을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유한한 것을 가지고 무한한 것을 만들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인간의 정신 속에 있는 신의 관념은 최고의 존재에 의해 주어지거나 드러난 것이 틀림없다. 유한한 정신은 무한한 것을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이라는 관념이 있으려면 먼저 그가 존재해야 한다. 계곡 없는 산이 존재할 수 없듯이, 완벽한 존재는 완벽해지려면 존재라는 속성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삼각형의 예시>

   

   

   

4. 데카르트와 포스트모던적 철학

데카르트가 이성, 자아, 의식, 일원성을 추구했다면 포스트모던은 그와 반대되는 반이성, 타자, 무의식, 모호성, 다원성을 추구한다. 전자가 주체의 탄생이라면 후자는 주체의 죽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