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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다/리 뷰

리뷰 : : 책 | 모순 / 양귀자

어린语邻 2014. 12. 26. 11:04

양귀자, 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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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집에서나 회사에서나 거리에서나, 비어 있는 모든  전화기 앞에서 절대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전화의  구속은 점령군의 그것보다 훨씬 집요한다. 사랑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전화란 단  두가지 종류로 간단히 나눌 수 있다.  그 혹은 그녀에게서 걸려오는 전화와  그 밖의 모든 전화.  이렇게도 나눌 수 있다. 전화벨이 울리며 그 혹은 그녀일 것 같고, 오래도록  전화벨이 울리지 않으면 고장을 의심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사랑이다.

  사랑이란,

  버스에서나 거리에서 또는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모든 유행가의 가사에 시도 때도 없이  매료당하는 것이다. 특히 슬픈 유행가는 어김없이  사랑하는 마음에 감동의 무늬를  만든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의식적으로든  혹은 무의식적으로든 이별을, 그것도 아주 슬픈 이별을 동경한다. 슬픈 사랑의 노래들 중에 명작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그래서 유행가는 차마 이별하지는 못하지만  이별을 꿈꾸는 모든 연인들을 위해 수도 없는 이별을  대신해 준다. 유행가는 한때 유행했다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사랑을 시작한  사람들에게 대물림되는 우리의 유산이다.

  사랑이란,

  발견할 수 있는 모든 거울  앞에서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지 않고 무심히 지나칠 수 없게 만드는 무엇이다. 자신의 얼굴에  대해 생애 처음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나. 자신의 눈과 코와 입을 그윽하게 들여다보는 나. 한없이 들여다보는 나. 그리고  결론을 내린다. 이렇게 생긴 사람을 사랑해  주는 그가 고맙다고. 사랑하지 않고 스쳐 갈 수도 있었는데, 사랑일지도  모른다고 걸음을 멈춰 준 그 사람이 정녕 고맙다고 사랑이란 그러므로 붉은  신호등이다. 켜지기만 하면 무조건 멈춰야 하는,  위험을 예고하면서 동시에 안전도 예고하는 붉은  신호등이 바로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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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함보다 더  사랑에 위험한 극약은  없다. 죽는 날까지  사랑이 지속된다면 죽는 날까지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절대 있는 그래로의 나를 보여 주지 못한 채 살게 될 것이다. 사랑은 나를 미화시키고 왜곡시킨다. 사랑은 거짓말의 감정을 극대화시키는 무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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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나인 것이다. 모든 인간이 똑같이 살 필요도 없지만, 그렇다고 똑같이 살지 않기 위해 억지로 발버둥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나를 학대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특별하고 한적한 오솔길을  찾는 대신 많은 인생 선배들이 걸어간 길을 택하기로  했다. 삶의 비밀은 그 보편적인 길에  더 많이 묻혀 있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