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한 삶의 자리의 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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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췌 : : 책 | 청춘 착취자들, 발췌

어린语邻 2014. 1. 27. 20:27
종교 단체와 비영리 단체의 인턴들은 다른 조직의 인턴들에 비해 인턴 과정을 여러 차례 반복하는 특징을 보인다. 인턴 경력이 많을수록 기회가 커진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지만 특히 그 두 분야에서는 인턴 경력이 정규직 채용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계속 인턴으로 남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분야가 분야인 만큼 투철한 봉사 정신의 발로라는 측면도 빼놓을 수는 없겠다.

비영리 조직에는 통계 자료에는 드러나지 않은 또 다른 엄청난 규모의 수입원이 있다. 자원봉사자들의 노동력이 바로 그것이다. 그들의 노동력 기부가 없다면 비영리 부문은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자원봉사자들의 노동력 기부는 ‘봉사의 소명에 대한 화답’이다. 금전적인 계산을 떠나 그 자체로 숭고한 행위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문제는 그 숭고한 행위가 오용되어 결국 다른 사람들의 삶에 피해를 주고 있다는데 있다.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주장하며 인간다운 삶을 보장할 수 있는 급여와 근로 조건을 위해 투쟁하는 정규직들의 입지를 위협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상주의적 비전’에 감응되어 무보수, 혹은 상대적으로 열악한 근무 조건도 마다 않고 ‘봉사의 소명에 화답’할 준비가 되어 있는 젊은 자원봉사자들의 노동력을 담보로 조직들이 골치 아프고 인건비도 많이 드는 정규직들을 미련 없이 해고할 수 있는 여건이 충분히 조성된 것이다.

정규직 노동자들의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 또한 인턴십 붐이 초래하고 있는 또 다른 부작용이다. 갈수록 많은 고용주가 신입사원을 뽑는 대신 인턴을 모집하고 있다. ‘경험’이 아니라 ‘생계’를 위해 일해야 하는 근로자들의 입지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는 것이다. 실직자들이 재취업할 수 있는 기회 또한 줄어들고 있다. 무보수 인턴들이 어느새 그 자리를 메우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인턴십 포화 현상은 노동 시장의 건강까지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인턴으로 근무한 경력이 미래의 취업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인턴 경력이 없는 구직자가 취업 경쟁에서 상당히 불리하다는 것은 확실한 사실이다.

비영리 조직은 경제적 관점으로는 그 설립 취지와 활동의 범위로 미루어 비과세 대상이 되는 사업체라고 규정할 수 있다. 하지만 사회적 관점으로는 오해와 착각의 소지가 다분하다. 특히 비영리 업체를 누구든 자원봉사자로서 받아들일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은 조직이라고 간주하는 것은 엄청난 착각이다. 인턴들을 채용해서 그들에게 정규직과 동일한 업무를 맡기면서도 임금을 지불하지 않는 비영리 업체들은 사기업들의 부당한 고용 계약과 유사한 불법을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놀랍도록 많은 숫자의 비영리 업체들이 자신들은 비과세 대상이므로 자신들이 고용한 인턴들의 법적 신분은 계약서를 비롯한 제반 절차에 관계없이 당연히 자원봉사자라고 믿고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대부분의 비영리업체들이 그 문제에 관해서는 전혀 신경도 쓰지 않고 있다. 대부분의 언론 매체들의 관련 보도 자세도 그 착각을 조장하고 있다. 대다수의 대학 교수들과 대학 취업센터 담당자들 또한 그 착각을 기정사실로 믿고 있다.

노동법 전문 변호사들인 카렌 기슬먼과 웬디 스미스는 이렇게 말한다. “비영리 사업체들은 자신들이 고용한 인턴들이 ‘공익과 자선, 박애주의에 감응되어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고 기꺼이 노동을 제공하는’ 자원봉사자들이라는 자의적 해석, 혹은 세간의 착각에 근거해서 그들의 노동력을 활용하면서도 법적으로 하자가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인턴들이 어떤 업무를 자원하게 되는 가장 대표적인 동기가 실질적인 지식과 경험을 넓히고 미래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서라는 점을 감안할 때 대부분의 인턴들은 자원봉사자로 간주될 수 없다."

일단 비영리 사업체들은 상호 모순되는 두 가지 자세로 인턴들을 대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그들의 경험과 업무 수행 능력의 부족함을 지적하며 언제든지 내팽개칠 준비를 하고 있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대가를 지불하지 않아도 되는 그들의 노동력을 마음껏 활용할 자신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기를 쓰고 있는 것이다. 한편 비영리 사업체를 지원한 인턴들은 보상 문제에 관한 한 지나칠 만큼 소극적이다.
아냐 카메네츠는 이렇게 말한다. “자신들을 위해서라기보다 세상을 위해 그 일을 하고 있다는 초심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멸종 위기에 처한 고래를 구하는 일’에 제 발로 따라 나선 상황에서 보수를 요구하는 건 웬만큼 얼굴이 두껍지 않고선 할 수 없는 일이지 않은가.”

인턴들의 노동력 제공을 경제 행위로 인정하고 적절한 보수를 지급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이직률은 낮아지고 생산성은 훨씬 높아질 것이다. 중대형 비영리 업체 임원들의 연봉이 상당히 고액으로 책정되어 있는 현실 속에서 인턴들에게 급여를 제공할 만한 재정적 여력이 없다는 핑계는 말이 안 된다. 또한 공공의 복지와 사회 불평등 해소를 표방하면서 인턴들에게 최저임금조차 지급하지 않는 건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차라리 자기네 인턴들은 모두 유복한 집안 출신이라서 그 정도의 희생쯤은 감수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그보다는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청춘 착취자들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