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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한 삶의 자리의 영광
리뷰 : : 책 | 코끼리는 보이지 않아 / 수잔 크렐러 본문
■ 열세 살 소녀 마샤의 눈에 폭력은 어떻게 비쳤을까? 이 책은 마샤의 눈으로 폭력을 마주한 보통 사람들의 복잡하고도 다양한 모습을 날것 그대로 보여 준다. 가정폭력, 그 폭력에 고스란히 노출된 남매, 버젓이 일어나는 일을 알면서도 침묵하는 대다수의 마을 사람들, 그리고 남매를 돕기 위해 마샤가 선택한 납치까지. 빠른 호흡으로 긴장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전개에 담담한 문체가 더해져 묵직한 주제를 더욱 흡인력 있게 전한다. 이 매력적인 작품은 수많은 찬사와 논쟁을 불러일으키며 독일 청소년 문학상 후보에 올랐다.
_책 뒷 표지
■ 조심스런 책 고르기
책을 읽는 것이 중요하다, 라는 생각에서 '어떤'책을 읽는 지가 중요하다로 생각이 바뀌어 가는 요즘, 책을 선정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그래서 도서관에서 전혀 모르는 책을 골라서 읽는 경우는 드물다. 이미 읽었던 작가가 쓴 다른 책을 읽거나 믿을 만한 사람이 추천한 책을 읽는다. 책을 읽기 전에 작가와 책의 배경에 대한 뒷조사(?)도 나름대로 하는데 역량부족이다. 그래서 주로 '추천'받은 책을 읽는 방법을 택한다.
'코끼리는 보이지 않아'라는 책은 믿을 만한 언니가 추천해 준 도서로 청소년 대상으로 쓰여진 소설인지라 가독성이 매우 좋다. 다 읽은 데에 3시간으로 충분했다. :)
■ 몰랐으면 편했을 이야기들
스토리는 매우 간단하다. 브란트너 아저씨는 아네와 그 아이들 (율리아와 막스)을 폭행합니다. 그것을 '마샤(6학년 여자아이)'가 보았고 마샤는 아이들을 돕기 위해 애쓰지만, 어른들은 아무도 마샤의 말을 믿지 않고 도와주려 하지 않습니다. 믿지 않는다기 보단, 믿고 싶지 않았고, 믿지 않는 것이 편했던 것이죠.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라는 책에 보면, 불편한 행복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몇 년 전에 읽었던 것이라 단어가 정확한지는 모르겠습니다.) 책의 저자인 '김혜자'씨는 제3세계 국가들을 방문하고 그들의 상황들을 실제로 보고 나서 한국에 돌아와서 에어컨 바람을 쐬고 편안한 침대에 눕는 것이 참 불편하다는 생각을 했다는 종류의 이야기 였던 것 같습니다. 이 책을 추천해 주었던 언니도 종종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것을, 알게되어버려서 그것에 따라 실천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라고 말을 하곤 했습니다.
아주 가까운 예시가 저에게도 있습니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릴 때, 계란 껍질도 담아서 버리곤 했었는데 어느 날 누가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음식물 쓰레기로 동물들 사료를 만드는데, 계란껍질이나 닭 뼈, 각종 먹을 수 없는 것들을 같이 버리는 바람에 그렇게 만들어진 사료를 먹다가 동물들이 목이 막혀서 죽는다고요. 물론 지금도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지 못하지만, 알게된 다음부터는 굳이 계란 껍질을 씻어서 일반 쓰레기에 버려야하는 부담감이 생기고야 말았습니다. 차라리 몰랐으면 편했을 것을요!
세상에는 '몰랐으면 편했을 이야기'들이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최근 영화 '변호인'에서도 송강호가 만약 부림사건의 실체를 알지 못했더라면 훨~씬 편했을 것입니다. 계란껍질을 씻어서 버리는 것 쯤이야 조금만 불편하면 되지만 영화 속 송강호의 삶은 그렇지는 않았잖아요. 훨씬 더 많은 댓가를 치뤄야만 했어요.
#
그런 일 이 단순히 이 동네에 어울리지 않을 뿐더러, 아름다운 평화와 정돈되고, 공들여 단장한 모든 것을 망가뜨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브란트너 아저씨네에서 분명 뭔가 이상한 소리가 난다는 걸 알아차렸을 법한 이웃주민들조차도 엘제 리프카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미 아름답고 평화로운 내 삶에 새로운 것이 들어옴으로 우리의 삶은 망가질 수 있기에, 많은 사람들은 차라리 귀를 막아버리기도 하는 듯 합니다. 저의 모습도 마찬가지에요. 요즘 정치때문에 난리잖아요. 요즘 저의 마음은 차라리 모르는 게 나을 것 같다, 입니다. 이미 제가 진실을 판가름에서 알 수없는 지경에 다달았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그냥 '모르는 게 편하지.'라는 마음으로 사는 것이 진짜 편한지는 모르겠습니다.
■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
"내가 창문으로 봤는데, 막스 아빠가 그 애를 벽에다 처박다시피 밀치더라고. 그 애가 나가떨어지면서 벽에 제대로 머리를 부딛혔고 말이야."
"으음..... 그걸 진짜로 봤다는 거야?"
"응"
"마샤, 그랬다 하더라도 오히려 넌 빠지는 게 나아. 그런 문제는 아동복지국이 신경 쓸일인까. 그런 문제는 너 혼자 힘으론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어."
"하지만, 아동복지국에서 어떻게 알고 그 일에 신경을 쓰겠어?"
"누군가 이미 복지국 사람들에게 말을 했을 거야. 네가 봤을 정도라면 다른 사람들도 본 적이 있겠지. (중략)"
"언젠가라니, 아빠. 그럼 율리아와 막스는 죽어."
"마샤. 말도 안돼. 사람들은 그렇게 빨리 죽지 않아. "
"하지만 누군가 나서서 뭐라도 해야해."
"그래, 하지만 너는 아니야. 그러기엔 너는 너무 어려. 그 문제는 네가 나서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어."
이미 세상은 저에게 '네가 나서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라고 많이 말해주었기 때문에 세뇌를 당한 것일까요?
저는 다만 두려운 것 같습니다. 책 속에서 마샤도 똑같은 생각을 합니다. '내가 본 것이 혹시 환상일까? 잠시 내가 꿈을 꾼걸까?' 와 비슷한 글이 적혀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도 생각하죠. 혹시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이것이 다른 사람들이 말하듯이 착각인 것일까?
그래서 요즘은 더 공부하고 싶고, 배우고 싶은 것 같습니다.
■ 책에서 본 국제개발
책에서 마샤는 다소 어리석은 방법으로 율리아와 막스를 돕습니다. 바로 '납치'이지요.
마샤가 평소에 봐두었던 오두막에 율리아와 막스를 가두고 음식을 가져다줍니다. 마샤에게는 그게 최선이었겠지요? 하지만 아무리 마샤의 따스한 마음을 감안하더라도, 잘한 행동은 아니였던 것 같습니다. '너를 도와주기 위함'이라면서 현명하지 못한 방법을 택하는, 동정심이 앞선 봉사 및 국제개발의 양상이 생각이 났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 따뜻한 마음에 더하여지는 실력과 역량인 것 같습니다. 마샤와 같이 상대를 생각하며 돕고 싶어하는 진정성 있는 마음과 그 일을 실제로 수행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사람이 함께라면 환상이겠지요! 앞으로의 봉사 및 국제개발 협력도 이러한 양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크게 세 가지의 질문이 생겼습니다.
1. 몰랐으면 편했을 이야기는, 알아야 할까요 몰라야 할까요?
2. 몰랐으면 편했을 이야기를 알았을 때, 나는 어떻게 하면 될까요?
3. 앞으로 내가 할 일을 위해 따뜻한 마음과 필요한 역량은 어떻게 갖출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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