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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아무것도 아닌 것들의 기쁨_김학철

어린语邻 2017. 2. 2. 23:31


2017-01-18 아무것도 아닌 것들의 기쁨_김학철


짧은 감상.

 

모두를 위한 좋은 소식,

 

 사회학의 역사에서 유명한 실험  하나인 '무지의 베일'이라는 실험은 내가 어떤 나라의 어떤 부모 밑에서 태어나게  지모른다는 가정 하에 특정 이슈에 대해 생각해보는 실험이다 실험은  롤스의 The theory of Justice라는 책에 나오는데여기서 그는 '공정한 사회' 태어나기  무지의 상태일  내가 어디서 태어날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로 정의한다그러니까 내가 정유라로 태어날 창녀촌에서 원치 않은 결과로 태어날  모르는 상태에서 '기본소득장학제도의료보험부자증세..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라는 질문을 받았을  어떤 반응을 할지 생각해보자는 거다이러한 상상 속에서 이슈를논의하면 이것은 너에게도나에게도 함께 좋을 결정을 내리자고 하게 되지 않을까?

 예수가 가져온 좋은 소식-복음- 이야기하는  책을 읽고  롤스의  실험이 생각났던 이유는예수의 복음은 참으로 정의와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였다예수의 복음은  롤스가 말하는 공정한-정의로운 세상에  맞는그리고  나아가그것을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무지의 베일이 벗겨진 세상그러니까 누구는 미국 상류층의 자녀로 태어났고누구는 북한의 어느  마을에서 태어난이미 모든 것이  결정된  세상에서 예수의 복음은 '아무것도 아닌 것들' 향한다오히려 예수의 복음은 찌꺼기 되는 것을 세우고낮춤을 대면하며불완전성을 사랑한다예수의 복음은 '' 존재가 (통시적/공시적 어떤 관점에서든낮든 높든온전하든 그렇지 않든 살아있다.

 베일이 벗겨진 순간나의 로또번호가 무엇을 가리키고 있는지에 따라 웃거나 혹은 좌절할  모두에게 다가가는 좋은 소식그게 예수의 복음이다.

 

-------------------------아래는 밑줄--------------------------

 

 

#1. 머리말

 

형제자매 여러분여러분이 부르심을 받을 때에 처지가 어떠했는지 생각하여 보십시오육신의 기준으로 보아서지혜 있는 사람이 많지 않고권력 있는 사람이 많지 않고가문이 훌륭한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다그런데 하느님께서는지혜 있는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어리석은 것들을 택하셨으며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셨습니다하느님께서는 세상에서 비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을 택하였으니  잘났다고 하는 것들을 없애시려고 아무것도아닌 것들을 택하셨습니다. (고전 1:26-28)

 

 

P14.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의 "종교론" 부제는 '종교를 멸시하는 교양인을 위한 강연'이었음.

"계몽주의와 무신론이 본격화된 이후에 종교가 몰락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교양인'에게 종교와 인간을 해명하는  책의 목표를 공유하고 싶어졌다. 20세기 중반이후 종교가 점차 사라질 것이라는 상당수 지식인의 예언을 비웃듯 종교 인구는 더욱 증가하고 있다도리어 인문지식과 과학지식을 갖춘 '교양인'들의 '종교문맹religious illiteracy' 대두되고 있다인간은 종교를 타자화   없다하여  시대의 '교양인', 고정관념과 선입관 속에 종교를 바라보는 이들에게 기독교의 진면목을  자락 들려주어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하게 들었다.

 

 

#1 위의 사도

1.    고대 지중해 세계의 디아스포라 바울

2.    예수 운동을 박해한 '바리새인바울

3.    바울의 급격한 전향

4.    예수의 사도 혹은 세상의 쓰레기와 찌꺼기 ; 이방인을 위한 사도

P76, 바울의 사도됨과 그의 찌꺼기/쓰레기됨에 대한 풍부한 신학적 논의가 있는데프랑스의 알랭 바디우도  점에 주목하여 바울을 자신의 철학에 수용한다그는 바울이 이른바 '진리 사건' 통해 보편적이면서 개별적인 주체로서 그리스도의 사도가 되었다고 선언한다바디우에 따르면 바울은 로마 제국의 폭력의 보편성과 헬라 문화의 기만적 지혜의 보편성을 모두 거부하고유대주의라는 특수한 공동체주의도 거부한 기존의 어떤 담론이나 외부 조건과 상관없이 일어나는 '진리 사건' 통해 보편적이면서 개별적인 순수한 주체로 소환되었고기존 질서의 밖에 놓인  주체는 현재 세상에서 "쓰레기"됨의 "주체성" 수용했다. "우주적 총체성을 가로지르고 해체하는 그리스도라는 사건은 바울에게서는 정확히 그러한 자리들의 헛됨을 가리킨다…… 우리는 찌꺼기의 주체성을 수용해야 한다그리스도교 담론의 대상은 오로지이러한 낮춤을 대면할 때에만 갑자기 출현할  있다." (알랭바디우사도바울)

 

5.    하늘 시민권자 바울과 해체하는 중심 ; 해체하는 중심의 

P93, 지젝에 따르면신의 자기포기 혹은 자기제한은 불완전성을 완전성보다 상위 개념으로 있게 하고완전한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것을 사랑하게 하는 근거가 된다이것은 완벽하다고 선언되는 기존 질서와 체계에 균열과 틈을 만드는 윤리로 이어진다신의 존재 방식 자체가 기존 질서에 대한 해체이기 때문에다나아가 존재의 궁극인 신은 끊임없이 해체되기에  '대타자뒤에 어떤 신비도 초월도 없게 되는 것이야말로 기독교적 체험의 핵심이라고 지젝은 주장한다이를 통해 그는 유물론적 신학자로 자처하며 기독교의 전복성을 살려내려 했다.

 

 

#2바울의 복음

1.    '좋은 소식들'

2.    인간 삶의 고통과 한계 ; 죄와 죄인에 대한 바울의 이해

P115, 인간이 처한 고통과 어려움을 묘사하기 위해 바울이 사용한 표현인 '' 마찬가지이다바울이 '' 말할  그것은 개인이 저지른 잘못된 행동을 포함하지만그것을 넘어서 세력화된 제도화된 죄의 체제구조악, '근본 모순 그것들이 가져오는 비극적인 결과를 가리키는 경우가 훨씬 많다바울은 종종 죄를 인격화하는데그것은 죄를 하나의 세력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였다바울은 인간이 ' 아래있고 때문에 고통당하고 있다고 말한다.

3.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십자가에 나타난 하느님의 본질

P137, 그리스도는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없는 대상을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사랑했다 사랑은 유대인들이 바라는 기적이나 헬라인들의 지혜와는 완전히 다른 구원을 목표로 한다사랑에는 기적이 없다자기 이익을 도모하는 지혜도 없다사랑은 서로를 누리는 기쁨과 헌신그리고 신중하고 사려 깊은 상호배려에서 생겨나고 유지된다그것은 상대와 더불어 기뻐하며상대의 이익을 도모하면서 자신을 뛰어넘는 것이다나아가 힘있는 사랑은 가치 없는 것을 가치 있는 것으로 바꾼다가치 있는 것을 사라아는 일은 쉽다그러나 가치 없게 여겨지는 것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여 그것을 사랑하고마침내 가치 있는 것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놀라운 사랑의 힘이다플라톤을 비롯한 헬라의 철학자들은 사람이 사랑할 만한 것들을 사랑하라고 격려했다그러나 십자가에 나타난 사랑은 그러한 격려와 다른 종류의 사랑이다십자가는 '야수' 변화시켜 본래 '왕자' 모습으로 되돌리고, '개구리'역시 '왕자' 돌이키려는 사랑이다그리스도는 사랑할 가치가 없다고 간주된 대상들을 사랑해서 그들을 하느님의 자녀로 불렀다이제 그들은 기쁨을 나누는 희생적이고 이타적인사랑 덕분에무가치한 것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귀한 존재마침내 타자와 더불어 사랑할  있는 존재로 변화되었다이것은 자기 자신의 이득을 추구하는 왜곡된 지혜와는 완전히 다르다사랑을 받아 존귀한 지위가 주어진다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들'에게 복음이 아닐  없다예수 안에서 하느님이 보여준 사랑이 바로 하느님이 인간에게 보여주고싶어했던 하느님의 기적이고 하느님의 지혜였다이는 이른바  세상에서 잘났다고 하는 사람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들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과 시선을 바꾸어야 한다는 메시지이기도 했다.

 십자가는 기적도지혜도 아니다다만 사랑을 보여준 십자가가 하느님의 능력이고 지혜이며그것을 통해 구원의 길이열렸다고 바울은 말한다그런데 일부 기독교인의 오래되고 강고한 오해대로 십자가를 통한 구원은 결코 '믿는다고만'해서 주어지지 않는다예수가 하느님의 사랑을 나타내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는 '사실' 그저 동의한다는것과 바울이 말하는 구원과는  상관이 없다구원은 '믿는다'라는 말을 했을  자동판매기의 상품처럼 툭하고 떨어져나오는  아니다바울이 선언하는 십자가의 구원에는 그러한 주술 같은 '기적' 없다십자가의 사랑을 통한 구원은 그십자가의 사랑에 참여하는 이들이 누리는 기쁨이자 복이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라고 말해 놓고 실제로 사랑하지 않으면 사랑의 기쁨도 슬픔도 감격도그리고  결과도 얻을  없는 것처럼십자가는 그것을 그저 하느님의 신비와 기적이라고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을 구원해주는 것이 아니라  사랑에 참여할  구원의 사건으로 일어난다 사랑이 ''를뛰어넘게 하고, '' 더불어 누리게 하고, '우리'속에서 기쁘게 만들기 때문이다또한  사랑은 신적인 삶으로 이끄는토로이기도 하다그래서 바울은  실존적 참여 십자가에 참여하라고 강력하게 외친다.

 

참여하는 십자가

P141. '참여하는 십자가' 세상의 통념으로는 기적도 지혜도 아니다. (중략그러나 바울은 그것 외에는 길이 없다고 선언한다앞에서 인용했던 고린도전서 1 22-25절을 다시 읽어보자참여하는 십자가는 '거리낌'이고 '어리석은 '이다그러나 십자가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에게는 그것이 바로 '하느님의 능력'이고 '지혜'.

 (중략신을 믿는 사람의 목표는 결국  신과 하나가 되어 신과 더불어 사는 것이다.

 

P142.  십자가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피조물로 탄생하게 되는데이들에게는  세상이 알지 못하는 새로운 힘이 주어진다하느님은 십자가에 참여하라고 요청한  스스로의 힘으로  일을 달성하라고 다그치지 않고  힘을 주는데하느님이 주는  힘은 하느님의 영인 '성령'이라고 바울은 가르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