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한 삶의 자리의 영광

리뷰 : : 책 | 냉정과 열정사이(ROSSO) / 에쿠니 가오리 본문

생각하다/리 뷰

리뷰 : : 책 | 냉정과 열정사이(ROSSO) / 에쿠니 가오리

어린语邻 2013. 3. 16. 01:12



냉정과 열정사이(ROSSO)

저자
에쿠니 가오리 지음
출판사
소담출판사 | 2000-11-2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하나의 사랑, 두 가지 느낌! 하나의 사랑을 두명의 남녀작가가 ...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아! 너무너무 슬픈 책이었다.

Blu를 읽은지 거의 몇 달만에 Rosso를 집어들게 되었다.

Blu를 읽을 때도, 꽤 괜찮다, 생각하면서 읽었는데

Rosso는 지하철에서 완전 집중해서 .. 거의 3-4시간만에 다 읽어버린 것 같다.

아오이의 감정이 나랑 너무 비슷한 점이 많아서,

아오이의 마음이 얼마나 힘들고 아플지 느껴지고..

그리고 그 원인모를 공허함, 어떻게 다뤄야 할 지 모르는 감정들..

내가 글로 써보지 못했던 감정들을 이 작가가 아주 세밀하게 그리고 가끔은,

부끄러울 정도로 적나라하게 적어두었다. 이 책 속에...

마치 내 일기같다, 아주 잘 쓰여진..



지하철에서.. : )


나와, 라고 쥰세이는 말해 주었는데.

나와, 라과.


With Me 


쥰세이와의 시간들을 추억하는 아오이.

마빈이라는, 자기를 많이 사랑해주는 그리고 완벽한.

아오이를 배려하고 아오이의 연약함을 품어주고 배려하는 그런 마빈.

그리고 분명한건, 아오이도 마빈을 사랑한다는 거다.

그런데도 쥰세이를 . 기억하는거. 

그런 애매모호한 이상한 감정. 묘한 감정..


한 마디 , 한 마디를 기억하는 아오이.

옛날 생각이 이렇게 날 때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작가는 '슬픔'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도쿄'를 억누른다고 하였다.

나의 아픔이 담긴 그 장소를 억누른다고 하였다.


아오이는 혼자있는 시간이 순간순간, '반드시' 필요했다.

아오이가 혼자서 슬픔을 억누르는 공간이 있는데,

부엌이랑 샤워실의 욕조.


나에게는 놀이터의 그네..

아님 아무도 없는 텅텅 빈, 그리고 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진 공간.

서교동 밤거리.

한강. 


그리고 장소가 마땅치 않을 때는 눈을 감으면 된다.

때론 눈을 감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고

때론 헤드폰을 끼고 음악 속으로 들어가면 된다.


혹은 책을 읽는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책을 읽으면,

내 슬픔이 책 속의 주인공의 슬픔이 된다.

이제 더 이상 나의 슬픔이 아니게 된다.



'나는 비로소 조금 울 수 있었다'


울 수 있는 건, 그래도 아직 살아있다는 증거이다.

비로소, 살아 있다는 증거를 찾았다.

비로소, 내가 아직 숨쉬고 있다는 걸 알았다.



도쿄를 밀어낸다.


아가타 쥰세이는 과거다.

어깨까지 닿는 머리칼도, 단정한 콧날도, 나를 지그시 쳐다보는 눈빛도.



'좋은 사람이라고 해서 사랑할 수 있는 건 아니겠지'


'나는 마빈을 사랑해요'


'그렇겠지(Maybe)'



관계가 지나쳐 지는 걸 두려워하는 아오이.

'지나치게 되잖아요. 너무 만지고, 너무 관계하고'

그건, 슬픈거라고. 그건 무서운 거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너무 관계하면, 끝이 너무 아프니까.. 그런거겠지?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잖아'라는 말에 아오이는 '긴장'했다.

아마 스스로도 알고 있었겠지.

내가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지금은 이렇게 변해버렸다는 것을.

달라진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는 건 참 무섭기도 하고 슬픈 일일 거다.





몇 년이란 시간이 흘러도, 시간이 도무지 약이 되지 않는 것들이 있나보다.

시간이 약이라고 믿으면서, 그냥 두었다가

가끔씩 더 사무치는 아픔으로 발견되는 것들,이 있나보다.


진작 보듬어주고 쓰다듬어줬어야 했는데.

괜찮다고 강요하지 말고, 안 괜찮으니까 어서 나으라고

토닥토닥, 해줬어야 했는데.





이 부부는 전체적으로 너무나 공감되서 다 찍어두었다.


도대체 작가는 내 감정을 어떻게 다 알고있는거지? 라는 생각이 들정도로.




끔찍하도록 서로를 사랑했는데, 모든 것이 완벽하게 맞았는데.

내내 함꼐 살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 진짜 너무 슬프다!

과거가 되버린 사랑.



이 부분도 정말로 공감이 되었다.

나를 늘 용서해주는 남자에게 나는 늘 모질게 군다.

내가 짜증내고 화를 내면 이해해준다.

그게 나를, 짜증나게 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나를 초라하게 만드는 거겠지.


나는 이렇게 못된 사람인데, 이렇게 생각하면서.

늘 이럴 수 밖에 없는 나를 불쌍히 여기면서.



' Let's talk '



상처를 입으면 공격적이 되는 것은 남자들의 본성일까.


그렇구나, 나만의 생각은 아니었어.

그래서 무섭다.



돌아갈 장소


사람은 대체 언제, 어떤 식으로 그런 장소를 발견하는 것일까.


나는 혼자 늘 생각하는 게 있었다.

이 땅 위에서 내가 돌아갈 장소가 없는 것 같다고.


어디도 나에게는, 나의 공간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었다.

어딜 가도 어색했고,

나에게는 아오이의 도쿄,와 같은 공간이 자꾸만 쌓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아직까지 나에게 상처를 주지 않은 공간, 

지금 머무르는 공간으로 오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 있는 곳에 머무를 때 안정을 느끼나보다.


나에게 도쿄가 많다.



어머나


머무를 곳이 없다고 한탄하고 있던 찰나, 몇 장을 넘기니 마음을 짠하게 하는 말이 있다.

' 사람이 머무를 곳은, 누군가의 가슴 속 뿐이야 '


도쿄는 많아져도, 그 모든 것을 다 덮을 수 있는 건

내가 머무를 만한 누군가의 가슴을 찾았을 때 일까?



옛날부터 그렇다. 나는 손을 뻗지 못한다. 누군가 나에게 손을 뻗어도, 나는 그 손을 맞잡지 못한다.

나에게는 아무것도 닿지 않는다.

다니엘라의 친절함도 알베르토의 우정도.


스스로를 인정해 버리는 아오이의 모습이 너무 마음이 아팠다.

가장 마음 아픈 것 중 하나가, 나의 아픔을 직면하고

나를 그렇게 밖에 살 수 없다고 스스로 나를 포기해버리는 거라서.

아오이가 너무 안쓰러웠다.


 

깨져 버리면 어쩌나 겁나 하면서.

아니면, 내가 지금 이 순간에 부서져 버리는 것은 아닐까 겁나 하면서.


겁난다


그토록 기다렸던 순간인데

내내, 이러고 싶었지만 동시에

이 순간이 너무나도 겁이 난다.

깨져서 날아가 버릴까, 

내가 깨져버릴까.

행복한 건 사실이겠지만, 지난 시간이 이 행복을 너무나도 어색하게 만들었나보다.






아오이에게는 '쥰세이'와의 기억이 너무나 큰 아픔이 되었다. 

그 아픔이 아오이를 계속 누른다.

마빈과, 완벽한 마빈 그리고 아오이를 정말 진정으로 사랑해주는 마빈

그리고 경제적으로도 여유로운 마빈,

때아닌 투정도 받아주는 마빈,

아오이를 늘 용서해주는 마빈. 

그런 마빈이랑 지내고 아오이 머리속에는 반 쯤은 다른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다니엘라와 알베르토와 즐거운 시간을 지내도,

머리 속에는 늘 반쯤 다른 생각이 있다.

둥둥 떠다니나보다.

아, 안쓰러워라.

그래도 다행인건, 아오이는 자기의 아픔이 어디서 오는 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는 거 같다.

진짜 힘든건, 무엇때문인지 조차 모를 때.. 일 것 같다.


마지막에 아오이가 쥰세이를 만나러 가는 장면을 제외하곤

책의 모든 부분이

아오이의 생활을, 일상을 그려낸다.

그리고 그 속에서 아오이의 생각들을 그려낸다.

그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쥰세이를 생각하는 아오이.

그리고 다소 단조로워 보이는 삶이 그려내지는데

그게 아오이의 슬픔을 담아내고 있는 듯 해서 


너무 마음이 아려왔다.


아마 이 책은 내가 읽은 최고의 소설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