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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한 삶의 자리의 영광
[조한혜정 칼럼] 어떤 말들이 노래가 되나/ 2017-12-26 18:21 본문
[조한혜정 칼럼] 어떤 말들이 노래가 되나
/ 2017-12-26 18:21
조한혜정
문화인류학자·연세대 명예교수
지금 그 나라는 어디에 있는 걸까요? 자비로움이 있는 세상에서 다시 남녀가 만나고 세대가 만나기를 축원하고 싶지만 하늘에 통하는 기도를 배운 적이 없습니다. “아무도 존경할 사람이 없고 의지할 사람이 없이 머문다는 것은 괴로움이다”라는 불경을 외우고 또 외우면 달리 머무는 법을 깨치게 될까요?
“요즘은 정 두터운 사람과 만나도/ 말문 트기 바쁘게 아픔이 먼저 온다/ 마주보기 무섭게 슬픔이 먼저 온다/ 호의보다 편견이 앞서 가리고/ 여유보다 주검이 먼저 보인다/ 스스로 짓눌려 돌아올 때면, 친구여/ 서너 달 푹 아프고 싶구나/ 그대도 나도 불온한 땅의 불온한 환자임을 자처하는 요즘은/ 통화가 끝나기 전 결론을 내리고/ 마주치기 앞서서 셔터를 내린다/ 좋은 물건일수록/ 의심을 많이 한다/ 서너 달 푹 아프고 싶구나”
고정희 시인이 1991년에 쓴 <예수 전상서>를 꺼내 읽습니다. 시인은 이 땅의 많은 시민들이 우울에 빠져 스스로를 고립시키며 여유 없이 살게 될 것을 예감했던 것 같습니다. 쓰나미처럼 몰려온 물신의 시간을 지나면서 아프지 않은 사람들이 괴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주치기도 전에 셔터를 내리는” 이들 사이에서 나도 우울한 종자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시장 상품 인간이 되기를 거부하고 쓸모 있는 실업을 할 권리”를 주장하라는 이반 일리치의 명료한 글보다 우물에 비친 자기 모습이 싫어서 우물가를 돌아 나오는 소년 윤동주, “아 이 지나친 시련,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지 말아야 한다’는 청년 윤동주의 마음이 위로가 되는 시간입니다.
트럼프 미 대통령이 모두의 성지였던 예루살렘을 한 나라의 수도라 선언한 이후 예수 탄생지 베들레헴에서는 산타 복장 시위대와 이스라엘군이 대치하는 우울한 성탄절을 보내야 했다고 합니다. 이탈리아의 한 성당에서는 크리스마스의 아기 예수를 탄피 수백개 위에 눕혔다고 하지요? 예수는 이주노동자인 요셉과 마리아가 호적을 만들려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여행길, 아니 피난길에 마구간에서 태어난 아기였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성탄 전야 미사강론에서 신은 “종종 알아볼 수 없는 모습으로 우리가 사는 곳을 걸어다니고 우리의 버스를 타고 문을 두드리는, 환영받지 못하는 방문자 안에 계신다”면서 이 땅에 쉴 곳이 없다고 느끼는 사람이 없도록, 난민과 이민자에게 관용을 베풀라고 강론하셨다고 합니다. 산타클로스의 고장 핀란드에서 발신한 메시지는 “외로운 이들을 생각하자. 사람이 사람에게 가장 큰 도움이 된다”는 말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땅에 외로운 이웃을 생각할 여유가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이어지는 참사 소식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젊은이들의 부고에 이 땅에 쉴 곳이 사라졌음을 매일매일 확인하고 있습니다. 올해 2017년 11월, 세계의 과학자들 1만5천여명이 ‘인류에 대한 세계 과학자들의 두번째 경고'(World Scientists' Warning to Humanity)를 하였습니다. 그간 포유류, 파충류, 양서류, 조류, 어류의 개체 수는 29% 감소했으며, 온실가스 증가, 개간, 대량 사육 등으로 인해 종 다양성이 급격하게 줄어들었고 지난 5억여년간 지구에서 일어난 다섯 차례의 대멸종에 이어 ‘제6차 대멸종'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25년 전 1차 보고서에서도 똑같이 말했던 것입니다. 경고가 먹힐 때가 오긴 오는 걸까요? 이런 ‘천기누설’ 소식을 지치지 않고 전하는 내가 싫어집니다. 아주 오랜만에 교회에 가서 크리스마스 아침 예배를 드렸습니다. 99년 된 작은 교회였는데 교인들도 몇명 없었고 자기 가족만 잘살게 해달라는 기도도 없었습니다. 십일조는 따로 챙겨야 한다는 어머니의 당부에 이제는 일제 때와 달라서 나라가 그 일을 할 것이니 더 이상 십일조를 바칠 필요가 없다고 자신 있게 답했던 예전의 내가 부끄러워졌습니다.
지금 그 나라는 어디에 있는 걸까요? 나라를 살려보겠다던 페미니스트 동료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요? 자비로움이 있는 세상에서 다시 남녀가 만나고 세대가 만나기를 축원하고 싶지만 하늘에 통하는 기도를 배운 적이 없습니다. 짝을 만나지 못해 떼로 몰려다니는 남자들, 독박육아로 지나친 시련을 당하고 있는 엄마들, 엄마가 되지 않기로 한 여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싶지만 땅에 닿는 기도를 해본 적이 없습니다. “아무도 존경할 사람이 없고 의지할 사람이 없이 머문다는 것은 괴로움이다”라는 불경을 외우고 또 외우면 달리 머무는 법을 깨치게 될까요? 어떤 말들이 노래가 되는지, 어떤 말들이 기도가 되는지 물으며 여행을 떠나야 할 것 같습니다. 아니, 푹 쉬어야 할 것 같습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028&aid=0002392404&sid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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