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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그 시절 너와 나는 사랑했을까

어린语邻 2017. 3. 2. 14:14

그 시절 너와 나는 사랑했을까

<질문교차로 인문학카페36.5º> 이 시대의 사랑

http://m.ildaro.com/7784


_발췌

그렇지만 그가 말하는 사랑의 범위는 한정적이었다. 함께 길을 걷다가 일용직 건설노동자들이 술을 마시고 지나가는 모습을 보았을 때, 갑자기 그가 “어휴, 일한 걸 술 먹느라 다 쓰고 생각 없이 사니까 저렇게 살지” 라는 말을 뱉었다. 나는 발끈해서 따졌다. “그게 무슨 말이야? 네가 건설노동을 해봤어? 일이 고되니까 술 한 잔 먹을 수도 있지, 저분들은 술도 먹어선 안 돼?” 그렇게 그날도 저녁 내내 다투며 데이트가 끝났다.

 

그는 몰랐다. 그가 손가락질하며 ‘저렇게 산다고’ 비난했던 사람이 알코올중독이었던 우리 엄마일 수 있다는 걸, 엄마가 만났던 일용직 노동자인 아저씨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소중한 사람일 수 있다는 걸 그는 몰랐다. 땀 흘려 정직하게 일하고, 고된 노동 강도 때문에 술을 먹으며 아픈 몸을 푸는 어떤 세계를 그는 몰랐다. 세상에는 같은 노력으로도 같은 결과를 얻지 못하는 사람이 훨씬 많다는 걸, 그의 부모님처럼 성실한 사람들의 가계가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건 의지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그의 집은 단지 그 무너짐을 살짝 비껴갔을 뿐이라는 걸 그는 몰랐다.

 

또 그는 몰랐다. 어떤 부모자식 관계는 남보다 더 아프고 폭력적일 수 있다는 걸, 그런 아픔에 ‘마땅한 도리’를 들이대는 게 얼마나 섣부른 판단이고 폭력이 되는지 그는 몰랐다.

 

그렇게 틈새가 걷잡을 수 없이 벌어져 더 이상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게 됐을 무렵,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별했다. 만약 그와 함께였다면 나는 그의 확실한 세계에 편입되기 위해 이미 내가 목격하고 경험하고 알게 돼버린 복잡하고 불확실한 세계를 외면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자신의 가족을 사랑했고, 동료를 사랑했고, 애인을 사랑했다. 그 사랑은 안락하고 다정했지만, 그의 눈길이 미치는 범위까지만 닿았기에 나는 고독했다. 내 세계는 이미 그의 눈이 닿지 않고 상상력이 닿지 않는 곳까지 걸쳐있었지만, 그는 그런 내 세계를 알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_나의 경험


 나도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나도 여기의 '그'가 되었던 적이 있었고, 또 내 곁의 누군가가 나에게 '그'처럼 행동하기도 했다. 참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있었다. 때 묻지 않고, 늘 바른 생각을 했다. 다른 사람을 사랑했고, 옳고 그름에 명확했으며,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실제로 살았고, 겉으로 보기에 정말 모범적이고 바른 사람이었다. 나는 '그런'사람과 함께이고 싶었다. 그런 사람과 함께 있으면 나도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았고, 삶의 아픔을 가지고 비뚤거리는 사람보단, 그런 사람과 함께이면 훨씬 더 안정감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정직하게 돌아보건데, 나는 여전히 그런 생각을 한다.

 나의 삶은 그렇지 못했다. 그리고 내 주변의 사람들의 삶은 그렇지 못한 이들이 더 많았다. 어느 교회 설교에서 한 목사가 말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가난한 사람을 돕고..미혼모를 돕고...동성애자들을 사랑하고...' 그 '우리' 그리스도인 안에는 가난한 자도, 미혼모도, 동성애자도 없고, 단지 그들은 '우리'가 아닌 외부의 어떤 존재로 우리의 도움을 받고 사랑을 받아야할 존재만 될 뿐이었다.

 마음이 쓰라린 사람은 울어야 하고, 삶이 힘든 사람은 쉬어가야 하고, 화가 나는 사람은 화를 내야한다. 울지말아야 해, 열심히 살아야 해, 화를 내면 안돼, 와 같은 상황도 맥락도 고려되지 않은 어떠한 도덕율들. 지금은 이런 일상적인 것들을 말하지만, 사실상 우리 사회에서, 삶에서 너무나  폭력적으로 등장하는 어떠한 잣대들. 

 누군가는 내가 왜 '인류학'을 좋아하는지 물었다. 나는 인류학이 무엇인지 아직 잘 모르지만, 인류학은 '맥락'을 생각한다. 그 존재가 위치한 맥락을 말이다. 절대적 도덕이 존재하는가, 진리가 존재하는가, 그러한 물음들은 잠시 미뤄두더라도, 그것에 대한 대답이 어떠하든, 우리가 지금 옆에 있는 누군가를 사랑할 이유는 충분하다. 

 부디 내 삶의 폭력이 조금이라도 줄어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