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시시한 삶의 자리의 영광

요가 일기 본문

일상적 성찰

요가 일기

어린语邻 2020. 4. 19. 01:16

나의 요가 역사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시작한다. 학교 방과후 수업으로 나는 친구들과 요가를 들었고, 타고나게 유연한 편에 속하는 나는 요가를 아주 즐겼다. 왜냐하면 나는 수업시간에 웬만한 동작은 다 비슷하게 따라할 수 있는, 남들이 보기에 되게 잘해 ‘보이는’ 아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아주 최근까지 내가 요가를 잘하는 줄 알았다. 바로 최근 한 요가선생님을 만나, 지금의 요가를 하게 될 때까지.


 

 

 

나의 요가 역사는 초등학교 6학년 방과후 학교에서 시작해서, 요가책이 유행하던 시기 집에서 요가책을 보고 따라하던 시절을 지나, 어딘가에서 친구가 다운받아서 준 요가 동영상을 틀어놓고 집에서 하던 시절을 또 지나고, 유투브에 수많은 요가 동영상이 올라오면 그걸 보고 집에서 또 따라하던 시절을 지나, 지금에 이르렀다. 아주 오랫동안 요가를 하긴 했지만, 보통 콘텐츠를 찾아서 집에서 혼자 하는 수준이었다. 학생이었고, 돈이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큰 맘먹고 요가학원에 몇 번 다닌 적이 있었는데, 첫 번째 요가학원은 아주 저렴했지만 손을 움직일 때 옆사람과 툭툭 부딪힐 정도로 가까웠고, 사람이 많은 저녁 수업에는 진짜 살갗이 닿을 것 같이 가깝게 서서 요가를 해야 했다. 두 번째 요가학원은 돈을 조금 더 주었고, 꽤 만족했다. 아니, 사실 그 당시에는 상당히 만족했다. 사람은 20명 내외였고, 공간은 잔잔한 음악과 어둑한 조명, 그리고 아른거리는 촛불이 있어 내가 좋아하는 분위기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문화센터에서의 요가를 몇 번 했다. 하지만 이런 요가의 역사에서 내가 크게 놓치고 간 부분이 있었다.

 

집에서 영상이나 책을 보며 요가를 하다보면 뉴스나 티비프로그램을 틀어놓고 할 때가 많았다. 나는 요가는 그 몸 동작의 ‘모양’을 따라하는 건 줄 알았다. 중학교, 고등학생 때의 일이다. 운동을 하면서 뉴스 정보도 듣고, 미드도 보고, 일석이조라고 생각해서 시간을 아낀답시고 그렇게 했다. 그렇다보니, 당연히 몸을 어떻게 써야하는지에 대한 설명도 제대로 듣지 못했고, 내 몸의 상태나 반응에도 전혀 집중하지 못했다. 그 때의 운동은 안하는 것보다는 나았지만, 그냥 쭉쭉 몸 늘리기 수준에 그쳤던 것이다.

 

그러나 이 부분이 학원을 다니던 시절에 해결되지 못했다. 뉴스도 미드도 틀지 않고 요가원에서 요가를 했음에도 그랬다. 첫 번째 요가원은 사람이 너무 콩나물시루 같아서, 사실 상 요가선생님의 몸 동작을 제대로 보는 것이 불가능했고, 소리도 듣기 어려울 때도 있었다. 상황이 그렇다보니, 선생님이 사람들의 몸동작을 살펴보고 수정해주는 것은 기대하기 어려웠다. 내 몸에 집중하기는 커녕, 그냥 동작을 따라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두 번째 요가학원은 인원이 적었지만, 요가선생님의 스타일이 그렇지 않았던 것인지, 여전히 수강생의 동작을 봐주는 경우는 상당히 적었다. 하나하나 봐주지 않더라도, 설명을 잘하면 보완이 가능하다. 하지만 당시의 설명은 보통 몸을 ‘어떻게 위치시켜라’에 더 가까웠다. 예를 들어, 손을 머리위로 올린다거나, 엉덩이를 땅에 놓는다거나와 같은 것이다. ‘힘을 어떻게 써라’와는 다른 종류의 설명이다.

 

세 번째, 문화센터의 요가는 보통 굉장히 활기찬 선생님이 많다. 한 분은 수업에서 요구하는 자세가 굉장히 근력을 많이 써야하는 어려운 동작으로 채워져있었다. 하지만 하면서, 이게 이렇게 하는게 맞는 것인지에 대한 의심이 많이 들었고, 더구나 이것이 나의 몸에는 ‘너무 무리’한 동작으로 오히려 해가 될까봐 염려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냥 무작정 힘을 쓰는 쪽에 가까웠다. 도장깨기 느낌이랄까.

 

게다가 나는 유연한 편이다보니 겉보기에 너무 성공적으로 동작을 해서 그런지, 가끔 동작을 봐줄 때도 나는 거의 봐주지 않았다. 또 남들은 한 30도만 꺾으면 아프다고 할 때, 나는 60도 정도는 꺾어줘야 몸이 시원했다. 많이 꺾는다고 잘하는게 아닌데! 지금 다니는 헬스클럽을 처음 등록했을 때, 기구필라테스 1회 체험을 무료로 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런데, 선생님이 기구를 사용해서 나에게 시키는 동작들을 내가 너무 수월하게 하자, 선생님은 (좀 당황하면서) ‘남들은 이 정도하면 굉장히 아픈데, 회원님은 잘하시네요’ 라고 말해주었다. 지금 요가선생님도 나는 꽤나 유연하다고 했다. 상황이 그렇다보니, ‘몸 동작’ 따라하기에 안그래도 익숙한 나는, 내가 잘하는 줄 알고 ‘몸 동작’만 따라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수업은 그럼 뭐가 다를까? 먼저, 이 선생님의 설명은 ‘몸의 동작’을 위치시키는 것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 어떻게 힘을 주어야 하는지 분명히 설명한다. 이 동작은 어디에 힘을 쓰기 위해, 어떤 근육을 기르기 위해, 혹은 어떤 몸의 균형을 위해 하는 것인지 설명한다. 그렇기 때문에 동작의 목적을 이해할 수 있고, 그러면 내 동작이 어떤 식으로 가야하는지 조금의 감을 잡을 수 있다.

 

거기에다가, 이 선생님은 이 동작을 할 때, 많은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힘을 잘못쓰는지 알고 있다. 그래서 그 부분을 콕! 찝어서 설명을 한다. ‘이렇게 하시면 안되고, 이렇게 하셔야 해요’. 사실 많은 요가선생님들이 이런 멘트를 많이 하시는데, 이 분은 그 설명의 범위나 정확성이 내가 경험했던 요가선생님들과는 좀 달랐다. 그리고 나의 경우에는, 계속 허리근육을 잘못쓰고 있었는데, 그렇다보니 몸의 모양은 똑같이 아주 잘 따라해도 힘의 분산이 잘 되지 않아 허리근육에 계속 무리가 가고 있었다. 그 부분에 대해서 나와 선생님이 모두 인지한 후에, 선생님은 운동을 할 때 내가 허리근육을 어떻게 잘못쓰는지 유심히 보는 것 같았고, 그에 맞는 자세 수정을 늘 도와주었다. 유연하다보니, 동작을 쭉쭉 잘 따라해서 내가 잘하고 있는 줄로만 착각했었는데... 나는 아주 엉망으로 요가를 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되었다. 예를 들어, 가슴과 몸통에 힘을 주면서 해야할 동작을 허리나 무릎, 혹은 팔목 같은 곳에 기대서 하고 있는 것이다.물론, 내가 자세를 취할 때 꾸욱 눌러가며, 당겨가며 자세를 고쳐줄 때 아프고 괴롭지만.... 하하... 그렇게 자세를 수정하다보니, 나도 내 몸에 대해서 더 잘 이해하게 되었고, 최근에는 허리 아픈 것도 많이 줄었다. (와우!)

 

이것이 가능한 이유가 무엇일까? 이 선생님이 재능이 특별히 있는걸까?

 

잘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분명히 느끼는 점은, 이 사람이 참 요가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보여주기 위해, 혹은 돈을 벌기 위해를 넘어서, 스스로가 요가를 즐기고, 요가를 통해 건강을 지키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마음이 늘 느껴졌다. 자기가 사랑하는 일은 잘 하기 마련이니까. 이 분도 그래서가 아닐까 싶다.

 

여튼, 큰맘먹고 꾸준히 시작한 운동의 여정이 이런 좋은 요가선생님을 만나서 기쁘다. 운동 가기 싫다가도, 이 선생님 수업을 놓치고 싶지 않아 갈 정도니, 나에게는 참 행운이다.

 

2020.02.20.

씀.

 

 

'일상적 성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식물 친구들  (0) 2020.04.19
요가 일기  (0) 2020.04.19
19.05.22. 읽는 시간  (0) 2019.05.22
2018.12.02. 찰랑찰랑  (0) 2018.12.02
2018.04.25_자본으로 얻을 수 있는 것들  (0) 2018.04.25
2017년의 감사  (0) 2017.12.16
0 Comments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