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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한 삶의 자리의 영광

2016-04-09 요한일서 2장 본문

일상적 성찰

2016-04-09 요한일서 2장

어린语邻 2016. 4. 9. 16:50

지난 1장 성경공부 이후에, 나를 지배하는 사상(철학)은 무엇인지 생각해 볼 것, 그리고 실은 그것이 나를 지배하고 있고 복음이 이것을 위한 장식품으로 작동하고 있지 않은지 고민해 보라는 장로님의 말씀이 일주일 동안 머리와 마음에서 맴돌았다.

   

이제 몇 번 배우다 보니 장로님의 방식을 조금 알게 되었는데, 그 장을 이해하는 전체적인 프레임에 해당되는 몇 가지 이야기들을 던지신 후에 다시 구절을 자세히 들여다 보는 식으로 접근하신다.

   

_요한일서 2장의 몇 가지 이야기,

   

2장의 내용이 잘 와 닿지 않는다는 나눔을 들을 후의 장로님의 질문은,

-왜 말씀을 읽는 것이 의지가 없으면 읽기 힘든 상황이 되었을까?

-자유시간이 있으면 내가 자연스럽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

에 대해서 고민해 보는 것이 위의 질문에 대한 것과 통할 것이다.

   

요한이 요한일서를 쓴 계기에, 영지주의에 대한 경계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영지주의는 dualism을 기본으로 하고 있는 사상이다. 선과 악/ 영과 육을 구분하여 인식한다. 이로 인해서 두 가지의 극단적인 현상이 나타나는데, 한 가지는 금욕주의이고 한가지는 영은 구원받았으니 육은 이제 마음대로 해야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영지주의의 사상적 체계를 기독교의 것과 일대일 대응시켜서 비교하면 사실상 잘못 된 것을 찾기가 거의 힘들다고 한다. 이것의 문제점은 어떠한 관계성에서 발생한다고 한다. (여기 부분은 자세히 설명해주시지 않으셨음) 당시 사람들이 dualism에 기반하여 예수님의 말씀을 이렇게 오해했다면, 지금 우리들의 사상에서도 믿음으로 우리가 구원받았기 때문에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는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처음에는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을 가지고 무엇인가를 시작하였지만, 그 마음이 없어지고 행위의 틀만 남는다. 그 마음이 없어지는 그 틀을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런데 틀을 유지해야 할 것 같아서 제도를 형성한다. 그런 식으로 인간의 역사는 돌고 돈다.

   

1장에 이어서 '지금 나를 지배하고 있는 desire는 무엇인가?'에 대해서 고민해 볼 것. 이단은 wrong motivation에서 생기는 것이지, 성경을 덜 알아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재가 잘못 아는 것에 대해서, 잘못 배우는 것에 대해서 두려워하는 것은 어쩌면 스스로를 속이는 것일 수도. 내 마음의 동기를 잘 점검할 것.

   

   

_차근 차근 살펴보기

   

1절)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죄를 범하지 않는다' : 죄를 범하는 것은 자기의 마음에 원하는 것을 허락하는 삶이다.

'너희에게 씀은' : 이러한 문제가 너희에게 있음을 깨달아라. 영지주의를 조심하라

'아버지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시라' : 예수그리스도의 참된 의미를 강조하고 있음.

   

영지주의를 경계하여 글을 쓴 요한, 현상적인 문제에 대해서 조목 조목 따지기 보다는 그 근본적인 마음의 자세에 대해서 다시 refresh하길 원한다. 인간은 계속 해서 타락하는 존재다. 인간은 제도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수 없이 노력해 왔지만 (절대왕정->민주주의->시민사회 등장, 언론 등장 등), 새롭게 탄생한 어떤 것은 또 타락하기 마련이다.

   

우리는 우리가 이 땅에서 고난 받을 수 밖에 없는 존재 임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찌그러진 상태이기 때문이다.

   

   

2,3절)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그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영지주의의 핵심은 그저 아는 것이다. 알고, 다만 마음대로 사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진리와 화합해서 산다. 진리를 '안다'는 것은 '야다'라는 용어로 이것은 '경험하고 체험한다'는 것이다. 경험하고 체험함으로 그에게 동화되는 것이며, 죄에 지배 받지 않고 내 육신의 정욕에 거스르는 삶을 사는 것이다.

   

4절) 그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3절의 말씀이 저러한 의미이기 때문에 그를 아노라 하고 계명을 지키지 않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히 거짓말이다. 진리가 그 안에 없는 것이다. 내 안에 진리는 있는가?

   

5절)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하게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그의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사랑'이 인간에게 회복된다는 것. 장로님께서 지난 주에 이어서 드신 비유, 내가 첫사랑에 빠졌을 때를 기억해본다면, 두근두근 설렘과 기쁨이 있다. 아가페의 일부를 느끼는 순간에도 우리가 이렇게 기쁘다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마음에 온전히 회복되면 어떨까? 아가페의 사랑이 우리에게 회복될 때 일어나는 일을 상상해보라!

   

6절) 그의 안에 산다고 하는 자는 그가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즉,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거하시면 우리는 그를 따라 행할 수 밖에 없게 된다. 흉내는 불가능하다.

   

8절) 다시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쓰노니 그에게와 너희에게도 참된 것이라 이는 어둠이 지나가고 참빛이 벌써 비침이니라

   

요한이 하는 이야기는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선포된 말씀이다.

   

9절) 빛 가운데 있다 하면서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둠에 있는 자요

   

형제를 미워하는 것은 예수그리스도가 내 안에 없다는 것이다. 거리낌이 없다는 것은 숨김이 없다는 것.

   

15절)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사랑=아가페 사랑, 이것은 창조의 원인이다. 인간과 하나님이 연합했을 때 생기는 엄청난 vitality이다.

그런데 인간이 세상과 연합한다. 그 결과로 자기 마음에 자기가 주인이 되고, 그래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만이 중요하게 된다. '내가 사랑이 많다'하여 그 사람만 사랑하는 것도 결국 세상과 결탁된 것이다.

만약에 내가 선을 행한다고 하였는데, 남이 나를 미워한다면 혹시 내 안에 악이 흘러나가고 있는 것이 아닌지 다시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16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선악과가 생각난다.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다. 이브가 처음 느낀 죄의 유혹이 지금까지도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이 땅에서 이룬 것에 만족하지 않게 조심하라, 주의하라..

이 땅의 어떤 것에도 내 마음이 사로잡히지 않도록 하라, 내가 가진 진정한 desire가 무엇인지 점검하라. 스스로를 속이지 말아라. 인정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품고 회개하라. 내가 두려워하는 것을 내려 놓아라.

   

   

   

손필기를 하다 보니, 맥락이 뚝뚝 끊긴 기록이다

다음에는 글보단 마음으로 새겨서 기록해 봐야겠다.

KBS성경공부를 마치고 나면, 마음이 가난해지고 한 없이 겸손해진다. 특히 오늘은 내가 '죄 구덩이' 속에서 철저하게 파 묻혀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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